때는 광복 직후, 일평생 기회주의로 짱짱한 세도(勢道)를 누려온 이중생(이승헌·사진 오른쪽)이 곤경에 빠진다. 사기·횡령·탈세로 쇠고랑을 차고 재산도 하루아침에 녹아날 판이다. 이 순간 '법률적인 죽음'이라는 연극적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자살로 위장하고 '두 번째 생(生)'을 사는 것이다. 재산관리인으로 지목된 사위 송달지(오동식·왼쪽)는 햄릿의 유명한 독백을 내뱉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오영진 작·이윤택 연출)는 키질·빨래·물지게·도마질·다리미질이 섞이는 첫 장면부터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표정과 몸짓, 리듬 때문이다. 해금으로 기막히게 연주한 전화벨, 외모가 출중(?)한 기생들의 등장, 요강 속 물을 마시고 뿌려대는 장면 등 희극적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
이 연극은 '없는 데 있는 것'과 '있는 데 없는 것' 사이를 왕복하며 긴장과 재미를 증폭해 나갔다. 이승헌을 비롯해 배우들은 종종 노래하듯이 대사를 읊었고 몸짓도 우리 가락과 잘 어울렸다. 고대 로마의 '쌍둥이 메내크미'부터 셰익스피어의 '십이야'까지 서양 연극에 흔한 쌍둥이 설정을 이중생이라는 한 인물에 포갠 것 같았다.
하지만 송달지가 재산 기부를 약속하는 장면부터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드라마틱한 반전(反轉) 이후 달라진 희극 리듬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배우들의 안정된 앙상블, 심리적 공간을 만드는 조명, 상가(喪家) 등 우리 풍속을 재현한 무대는 수준급이었다.
▶16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02)3668-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