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2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 등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졌다.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서현석)와 피아니스트조재혁·이승현이 협연을 했고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박은희 음악감독이 해설을 보탰다. 한쪽에 걸린 현수막에는 '기업과 예술의 아름다운 만남'이라고 적혀 있었다. 중견 인쇄출판 회사인 성도GL이 주최한 이 음악회는 무료공연으로, 이 회사 임직원과 가족, 헤이리 주민 등 700명에게 가을밤 운치 있는 음악 선물이 됐다. 서현석 지휘자는 "연주 기회를 많이 갖기 어려운 우리 오케스트라에게 성도GL은 행복하고 값진 인연"이라고 했다.

작년 성도GL이 파주 헤이리에서 주최한 무료 음악회.

성도GL은 헤이리에 '공간퍼플'이라는 미술관을 연 2007년부터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며 해마다 봄·가을에 야외음악회를 이어왔다. 이 회사는 신입사원 환영회를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를 보며 하고 한해 네 번 임직원과 가족을 공연장·전시회에 초대하는 등 '문화경영'에 힘쓰고 있다. 성도GL 관계자는 "지난 2000년 20%에 이르렀던 이직률이 최근 몇 년은 2~3%대로 줄었다"면서 "직원들이 악기를 배워 직접 연주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영국 탄광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지난해 10월 특별한 관객을 만났다. 강원도 태백·영월·정선·삼척 등 폐광 지역 초등학생 310명이 어린 소년이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 성장 드라마를 단체관람한 것이다. 정연제(영월 내성초등 5년)군은 "주인공 빌리의 탭댄스와 발레가 짜릿했어요. 이렇게 멋진 공연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 행사는 하이원리조트가 2009년 시작한 폐광 지역 문화예술교육사업의 하나였다. 지난 11월 8일에는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아이들이 한해 동안 배운 것을 연극·연주·전시 등으로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하이원리조트가 2009년부터 강원도 폐광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어린이들이 지난해 11월 8일 태백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우리는 예술가!’발표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문화예술 후원은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견기업들도 메세나에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메세나협회 연차보고서를 보면, 2007년 1876억원(2402건)이었던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2009년 1577억원(2706건)으로 금액은 줄고 건수는 늘었다. 경기(景氣)를 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메세나협회 박현준 과장은 "중소기업의 참여 요청은 꾸준히 늘고 있고 정부가 매칭하는 관련 펀드 규모도 지난해 6억원에서 올해 8억원으로 증액됐다"면서 "지원 액수는 적어도 필요한 곳에 알차게 돕는 중소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동일방직이 2003년 프랑스 파리에 세운 정헌메세나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35세 미만의 젊은 화가를 해마다 한 명씩 후원하고 있다. 선정된 작가의 작품 활동 및 개인전 개최에 연간 3만6000유로(약 5300만원)를 지원한다. 2009년에는 역대 수상자들의 작품을 모아 국내에서 '아름다운 다리(Beautiful Bridge)'라는 전시를 열었다. 정헌메세나 관계자는 "유럽에서 기업 이미지를 높이면서 문화예술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전라북도 전주를 대표하는 극단 명태는 지난 4년 동안 삼양감속기로부터 매년 3000만~4000만원씩 후원을 받고 있다. 이 극단의 최경성 대표는 "이 후원 덕에 지난해에도 해남·장수·순창 등 20군데 문화 소외 지역에서 순회공연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극단 명태와 삼양감속기의 결연 사례는 지난해 메세나 대상에서 아츠&비즈니스 부문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MAK(Media Art Korea) 어워드'를 만들어 미디어 아티스트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는 계양정밀, 2002년부터 미쟝센 단편영화제를 후원해온 아모레퍼시픽, 서울튜티앙상블을 후원하는 보청기 업체 스타키코리아, 발달장애청소년 오케스트라를 후원하는 삼립식품 등이 우수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예술분야 기부 활성화를 위한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한 남정숙 인터컬쳐 대표는 "대기업 메세나가 사회공헌에 집중한다면 중소기업은 문화 마케팅이란 관점이 필요하다"면서 "볼펜 제조사의 디자인 분야 후원처럼 자기 상품을 예술 지원을 통해 알리고 그 효과를 분석할 수 있게 도와준다면 더 많은 중소기업이 메세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