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온 청년의사 재훈(황승현·사진 왼쪽)은 풍랑주의보로 섬에 발이 묶인다. 여기서 작은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 무영(고동업·오른쪽)과 그의 만남은 처음부터 서먹서먹하다. 라디오에서는 태풍 '덴빈'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험악한 날씨에 마을 사람 둘이 다치면서 이 부자(父子)의 사연이 조금씩 드러난다.

경계없는예술센터가 만든 연극 '덴빈'(윤기훈 작·연출)은 소박하지만 힘 있는 드라마다. 어머니의 병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재훈을 향한 박 간호사(이나리)의 짝사랑, 지적 장애를 앓는 아들 정구(이하늘)를 남기고 죽어가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소용돌이친다. 삶은 저울질의 연속이다. 재훈은 결국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아버지를 옆에 두고 다른 환자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배우들의 호흡과 앙상블이 부드러웠다. 웃음과 긴장, 슬픔을 적절히 배치해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무대와 연기에서 소금에 절인 공기 냄새가 나면 더 좋겠다. 화해와 용서를 향해 가는 후반부 여정은 신파적이고 작위적이었지만 훌쩍이는 관객이 많았다. 태풍 이름은 '저울'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31일까지 서울 상명아트홀2관.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