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것은 살구뿐이었다. 뮤지컬 '왕세자 실종사건'(한아름 작·서재형 연출)의 무대는 바둑판 무늬의 바닥부터 술잔까지 온통 사각형의 잔치였다. 배우들의 움직임도 직각보행으로 양식화돼 있었다. 때론 아주 느리고, 때론 뜀박질로 변했다. 규칙이 정해져 있는 퍼즐 게임 같았다.

조선시대 궁궐에서 왕세자가 실종된다. 그 시각 처소를 이탈했던 중궁전 나인 자숙(전미도)과 숙직 내관 구동(김대현)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런데 자숙이 임신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급회전한다. 왕세자의 실종이라는 사건은 희미해지고 자숙과 구동의 관계, 살구에 얽힌 사연 등으로 초점이 옮아간다.

형식의 미학을 보여준 뮤지컬‘왕세자 실종사건’.

막이 열리면 종소리, 개 짖는 소리, 새 울음이 섞이면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가 울려 퍼진다. 중전(김지현)이 자숙에게 "너도 누굴 연모한 적이 있느냐?"고 물으며 술을 마신다. 외로움과 그리움, 결핍의 술잔이다. 밤에 몰래 만나 살구를 주고받은 구동과 자숙의 사연도 이것과 딱 겹쳐진다.

'왕세자 실종사건'은 2005년 연극으로 먼저 공연된 작품으로 뮤지컬로는 초연이다. 연극보다 훨씬 친절해지고 먹음직스러워진 것 같다. 사건 당일 자숙과 구동의 행동을 조각조각 잘라 반복재생하거나 상상을 더해 변주하는 장치가 흥미로웠다. 여러 패턴과 모자이크를 만드는 재미였다.

이 무대엔 사랑의 원형질이 있었다. 다른 배우들의 직선형 움직임과 달리 곡선을 그리고 뛰는 자숙과 구동의 회상 장면은 담백했다. "자자 자숙아, 자자 숙숙아~" 같은 구동의 노래는 아무렇게나 떼어낸 밀가루 반죽 같지만 솔직하고 맑았다. 구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살구나무를 걷어차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형식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면서 감동을 주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음을 접고 입을 닫아야 하는 구동의 슬픔, "멍청이!"라는 표현에 감춘 애정, 희극적인 왕(조휘)과 최 상궁(태국희)…. '왕세자 실종사건'은 겹쳐 입은 의상처럼 희극과 비극이 포개져 있었다. 배우들의 정교한 움직임과 호흡, 앙상블이 단단했다.

▶11월 7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