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래로 큰 틀을 꾸준히 유지해온 사법제도가 올해를 고비로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대법원 개편, 전면적인 법조일원화 시행 등 굵직한 이슈들을 논의하면서 오는 12월까지 개선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대통령·총리·대법원장의 자문기구가 사법개혁을 논의한 것과는 달리 이번엔 국회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사법제도의 틀이 바뀔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주영 사개특위 위원장은 "사법제도가 큰 폭으로 바뀔 것"이라며 "특히 대법관 한 사람당 연간 3000건 가깝게 처리하는 현재의 상고심 시스템은 반드시 고치겠다"고 말했다. 사개특위는 올해 초 '강기갑 의원 국회 폭력 사건'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판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사법제도를 전면적으로 고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대법관 증원 움직임에 법원은 강력 반대
한나라당의 상고심 개편 방안은 대법관을 늘리자는 것이다.
여상규 의원이 낸 '대법관 24명안'을 중심으로 20명에서 많게는 26명까지 증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간 3만건에 달하는 상고심 사건 부담을 감안할 때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대한변협도 '대법관 50명안'을 공식 입장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일부 야당 의원들은 "대법관을 늘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며 한나라당의 증원안은 법원을 길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며 증원에 반대하고 있어 최종 합의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대법원에서 심리할 사건을 미리 골라내는 상고심사부를 설치해 대법원 심리 사건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해법"이라는 입장이다.
심준보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은 "대법관이 늘어날 경우 전원합의체 운영이 어려워 '법령 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판결이 1년에 20~30건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제시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관이 20명이 넘게 되면 헌법재판소 재판관(9명)에 비해 대법관의 권위가 상대적으로 실추된다는 점을 법원이 우려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최근 법원은 사개특위 논의가 불리한 방향으로 흐를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주 열린 사개특위 법원소위에 국회의원은 불과 4명만 나왔는데, 법원행정처에서는 10명가량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을 대법관과 대법원 판사로 이원화해 가벼운 사건은 대법원 판사에 맡겨 부담을 줄이자는 '제3의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독일은 130명이 넘는 대법관 및 대법원 판사로 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이 이같은 이원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법조일원화 시행시기도 이견(異見)
검사·변호사 등으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법조인만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를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도 사개특위 논의의 핵심 쟁점이다. 여야는 2017년에 시행하자는 쪽이고, 법원은 너무 성급하게 시행하면 부작용이 크다며 시행시기를 2023년으로 늦추자는 입장이었다.
최근 대법원은 2013년에 임용할 법관 전원을 경력 3년 이상인 법조인 중에서 선발하겠다는 방안을 사개특위에 제안했다. 법조일원화 시행시기를 양보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 대법관 증원 여부 등 다른 민감한 이슈에서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한발 물러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상설특검은 도입 불투명
법원보다 논의 범위가 다소 좁은 편이지만 사개특위는 검찰·변호사 분야 개선안도 논의 중이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주장하는 공직자비리 수사처나 상설특검제 도입 여부가 쟁점인데, 반대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아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변호사 소위에서는 전관예우 논란을 막기 위해 판사·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곳의 사건을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하자는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변호사 수임료가 비싸다는 지적에 대해 적정 수임료 기준을 법무부 장관이 고시(告示)로 발표토록 하고, 이를 벗어나 터무니없이 많은 금액을 받은 변호사에 대해선 변호사단체가 제재를 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