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억류된 아이잘론 곰즈(Gomes)를 데려온 카터 전 미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나지 못했다. 김정일은 카터 방북 중에 중국에 갔다. 워싱턴과 서울의 기자들은 카터가 김일성을 만나 북핵 위기를 수습했던 1994년과 달리 외교적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면서, 이번 카터의 방북을 '최악', 혹은 '기대에 못 미친' 활동이었다고 평가한다.
카터 방북 몇 주 전, 미국의 외교 당국자들이 북한을 방문해 곰즈를 만나고 돌아왔다. 이들은 곰즈가 정서적·육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며, 미국에 있었다면 '자살 방지 감시'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보고를 접한 워싱턴은 곰즈 사태를 시급한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만약 곰즈가 (타살이건 자살이건) 사망한다면 이는 매우 오랜만에 미국 민간인이 북한에서 목숨을 잃은 사례로 기록돼 미국은 매우 복잡한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게 된다. 천안함 폭침 이후 발생한 전 세계적 긴장 상황도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컸다.
미 정부는 카터를 비롯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존 케리 상원위원장 등 곰즈를 구출해오겠다고 제안했던 고위급 인사들을 다시 접촉했다. "병든 곰즈를 데려오겠다고 장담하는 사람을 북한으로 보내겠다"는 미국 정부의 제안에 응한 사람은 카터가 유일했다.
미 정부는 처음부터 카터의 임무가 인도주의적 사안에 국한된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대북 제재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북한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데 주력해왔다. 장래에 북한과 다시 협상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과의 직접 협상은 현재 백악관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미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시점 및 장소에 대해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상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미 정부는 카터에게 공식 외교 채널 밖의 협상은 불필요하며, 방북의 최우선순위는 '곰즈의 귀환'이라는 인도주의적 임무임을 확실히 전달했다. 카터의 방북엔 정부 관계자가 한 명도 동행하지 않았고, 방북 목적에 대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언론 보도도 자제됐다.
그러나 힘겨운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파견하면서, 그가 '규칙'을 준수하리라고 확신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미 정부는 북핵 위기가 불거졌던 1994년 김일성을 만나 미국과의 핵 협상 동의안을 이끌어냈던 카터가 이번 방북 길에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카터의 확답이 정부에 신뢰를 줬다.
카터의 임무는 앞으로의 대북 협상에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암시를 준다. 북한은 그동안 비공식적인 고위급 인사들과 접촉해 모종의 동의안을 이끌어낸 후 이를 공개적으로 떠벌림으로써 공식적인 협상에의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김정일이 지난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을 만난 후 억류 선원들을 풀어주면서 이명박 정부를 압박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북한이 리처드슨 주지사,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등을 비슷한 방법으로 이용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카터의 방북과 두 명의 여기자를 구하기 위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난해 북한 방문은 평양에 확실하고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클린턴과 카터는 철저하게 '대본'에 따라서만 행동했다. 이것이 카터가 개인적으로는 득을 보지 못했을지언정, 미래의 (대북) 협상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