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 하얗게 종이가 쌓여갔다. 베스트셀러 작가 토마스(류정한)와 그의 기억에서 나온 엘빈(이석준)은 종이 뭉치를 공중으로 날리면서 과거를 복기한다. 여기서 종이는 엘빈이 영감을 주고 토마스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을 상징한다. 어린 시절 단짝이었던 이들은 성인이 되면서 멀어지고 엘빈은 자살한다. "눈송이 같아 엘빈. 손에 잡히지 않고 바로 사라져버려. 인생처럼"이라는 토마스의 말이 아프다. 갈라진 우정처럼 흩어졌던 종잇장들 위로 어느 순간 흰 눈이 내린다. 따뜻했다.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연출 신춘수)는 작지만 힘있는 수작이다. 엘빈과 토마스가 종잇장을 눈처럼 뭉쳐 던질 때는 그들의 사연이 마음에 팍팍 박히는 것 같았다. 얼굴은 차가워지고 가슴은 뜨거워지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류정한과 이석준은 적역에 가까운 호흡을 보여줬다. 고여 있는 머릿속의 기억처럼 움푹 들어간 형태로 꾸며진 책방 세트(무대미술 정승호)도 양감과 깊이가 있었다.

무대는 엘빈이 죽자 어린 시절의 약속대로 장례식장에서 추모사를 읽는 토마스의 모습으로 열린다. "우리는 오늘 엘빈의 생애를 기념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내가 그를 기억한다는 설정이 애틋하다. 토마스의 문학은 "네 머릿속에 이야기가 몇천개야. 아무거나 골라 적어버려"라고 격려했던 엘빈으로부터 잉태됐다. 이야기는 어느 순간 노래가 된다. "내 몸의 힘은 공기의 흐름일 뿐/ 그 작은 날개로 시작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로 흐르는 '버터플라이', 이중창 '눈 속의 천사'가 그윽했다.

하지만 이 2인극은 단점도 노출했다. 엘빈이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또렷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날리는 종이눈의 양도 부족했다. 관객이 보낸 박수 속에는 이 드라마가 더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류정한·신성록이 토마스를, 이석준·이창용이 엘빈 역을 나눠 맡는다. 9월 19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