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은 아픈 독백(獨白) 같다. 70대 노인의 자살로 출발하는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윤대성 작·임영웅 연출)은 고령화 시대의 쓸쓸한 독백들로 속을 채운다. 빈소(殯所)를 찾은 친구들은 너나없이 외롭고, 영정사진을 보며 술을 들이켜다가 중얼거린다. 퇴직부터 죽음까지, 그 빈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노년의 고백이다.
독거노인 장윤수는 죽을 때까지 술을 퍼마시다 숨을 거뒀다. 방송작가 나상일(권성덕), 명예퇴직한 은행 지점장 서우만(이인철), 배우 이영호(이호성) 등 친구들과 장윤수의 전처 홍여사(손봉숙)가 문상을 온다. 그들의 독백과 대화는 내시경처럼 노년의 속을 비춰준다. "남자가 일 떨어지면 썩은 고목이지" "외로워서 자살한 거야" "죽음만이 저만치서 기다릴 뿐이고" "넌 몸으로 깨달은 거야. 인생이 허무하다는 걸" ….
그들은 친구의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본다. '한 번만 더…'는 특히 화장터 장면이 좋았다. 사선(斜線)으로 길게 뽑은 조명은 즉물적으로 텅 빈 느낌을 준다. 화장장엔 역시 세 친구뿐이다. 유골함을 든 상일은 "한 인간의 종말이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라고 푸념한다. 이어지는 홍여사의 살풀이는 '짐을 벗었으니 훨훨 날아가라는 춤'이다.
영정사진 속 장윤수(조명감독 김종호의 사진)는 촛불과 향 연기 사이에서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송곳에 찔린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는 이 연극도 마냥 패배주의로 곤두박질 치지는 않는다. 50~60대 여성 관객은 늙어서 힘 빠진 남자들의 넋두리를 들으며 자주 웃었다. 상일·우만·영호는 함께 뮤지컬을 만들어 공연하자고 의기투합한다. 권태라는 재앙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 뮤지컬 제목이 '한 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이다.
▶5월 2일까지 서울 산울림소극장.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