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새해 문화계에서 주목받을 젊은 이름은 누구일까. 그동안 쌓아온 성과와 능력, 노력으로 미래가 더 기대되는 영파워들을 각 분야별로 소개한다. 대상자는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본지 기자가 선정했다.
뮤지컬 배우 홍광호(28)가 허연 김을 뿜었다. 영하(零下)의 입김과 영상의 담배 연기가 뒤섞였다. 2010년 가장 촉망받는 뮤지컬 배우인 그에게 '몸에 지닌 것 중 보물 1호'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성대 아닐까요? '성대 보험'이라도 들어야겠어요."(웃음)
그렇다. 홍광호는 현재 가장 노래 잘하는 뮤지컬 배우로 손꼽힌다. 별명마저 '미친 가창력'이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노래하는 저 배우가 누구지?" 묻는 관객이 많다.
최근 홍광호는 지난해 히트한 TV 드라마 '선덕여왕'의 삽입곡 '발밤발밤'으로 더 유명해졌다. 유신과 비담, 선덕여왕의 미묘한 관계가 농축된 '발밤발밤'은 '정처 없이 걷는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다. 홍광호는 "내 짝사랑을 떠올리며 눈물범벅으로 불렀는데 한 테이크(take)로 간 노래"라고 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고 곁에 있을 수 없는 감정을 실었어요."
10대 시절 그는 문제가 많았다. 지각이 잦았고 흡연도 심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벌점이 쌓인 홍광호는 계원예고 2학년 때 교내 뮤지컬 《가스펠》 공연에서 마지막에 탈락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떤 결심을 한다. '뮤지컬 배우가 되리라!'
그 꿈으로 홍광호는 중앙대 연극과에 진학했고, 2002년 뮤지컬 《명성황후》 영국 공연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그 무대에서 그는 아무 대사가 없는 '신하' 역을 맡았다. 그 후 《사랑은 비를 타고》《지하철 1호선》《그리스》 등 오디션에서 20여번 미끄러졌다. 입대한 그는 육군 11사단 군악대에서 노래를 불렀다. 홍광호는 "신병교육대나 사단장 회식 자리에서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같은 가요를 불렀고 그 시절 악보 보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가 자기 노래를 부르기까지는 자그마치 4년이 걸렸다. 2006년 《미스 사이공》에서 남자 주인공 크리스의 커버(주인공에게 사고가 생길 때 투입되는 배우)를 맡은 것이다.
"다 포기하고 있었어요. 《미스 사이공》에서도 저는 그냥 베트남 사람 중 한 명이었지요. 그런데 공연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 2막부터 갑자기 주인공으로 불려간 겁니다. 크리스를 맡았던 마이클 리의 목소리가 잠긴 순간이었어요. 제 연기 인생에 가장 드라마틱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홍광호는 그때부터 주인공을 맡기 시작했다. 2007년 《첫사랑》, 2009년 《빨래》, 2010년에는 《오페라의 유령》이다. 《오페라의 유령》에 라울로 출연 중인 그는 오는 3월부터 팬텀(유령)으로 '승진'한다. 홍광호는 "유령은 40세쯤 맡고 싶은 배역이었는데…"라고 했다. 10년 일찍 그 인물이 되지만 절반쯤 그는 준비된 배우다.
"라울은 그냥 키 크고 멋있는 남자라 변화도 매력도 없지요. 저는 이면(裏面)이 있는 인물에 끌립니다. 그래도 감사했지요. 유령 역으로는 부족한 게 많지만 최선을 다할 겁니다."
《오페라의 유령》의 노래는 클래식이다. 홍광호는 이 뮤지컬에 들어갈 때 "이건 《미스 사이공》이 아니야. 넌 바리톤 발성을 써야 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라울은 저음을 내야 하지만 고음을 미성으로 부르는 유령은 제게 더 맞는 역할이고, 그 부분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이 배우의 꿈은 뭘까. 홍광호는 "내 이름을 건 창작 뮤지컬을 하겠다"고 했다. 창작 뮤지컬, 특히 초연일 경우 배우는 추락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그는 "용기를 내고 모험을 해야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게 창작"이라고 했다.
홍광호는 "매작품이 내겐 터닝 포인트"라고 했다. 조승우가 '가장 겁나는 후배'라고 했던 그는 "노래는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mind·자세)만큼은 자신 있다"고 했다. "그동안 멘토 역할을 해준 조승룡 선생님, 승우 형, (최)재웅 형, (김)선영 누나에게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작품을 고르는 기준을 물었다. "《스위니 토드》처럼 음악과 드라마가 탄탄한 뮤지컬에 끌려요. 가장 중요한 건 가슴이 설레야죠. 설레지 않는 순간이 올까봐 두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