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츠용품 제조업체 슬로비의 강신기(50) 대표는 2001년 봄을 서울역 지하도에서 보냈다. 돌침대 생산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IMF 경제위기 때 16억원의 부도를 내고 사우나와 고시원을 전전했다. 건설현장 일마저 끊기면 서울역 지하도에서 박스를 덮고 잤다.

그랬던 그는 발명 특허 하나로 일약 연매출 100억원을 올리는 유명 기업인이 됐다. 강씨는 우연한 기회에 놀이기구 '에스보드'를 개발, 2004년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발명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스케이트보드처럼 생긴 에스보드는 올라선 채 두발을 앞뒤로 움직이면 옆으로 나가는 놀이기구다. 국내외 특허를 보유한 강씨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15억원을 지원받아 지금의 회사를 세웠다. 성공 스토리가 알려져 책도 내고 정부 공익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노숙자 시절보다 더한 절망에 빠져 있다. 출시 첫해(2006년) 월 2만~3만개가 팔렸던 에스보드는 짝퉁(모조품)이 쏟아지면서 요즘 월 200~300개만 팔린다. 작년부터는 인천 공장도 멈춘 채 창고에 쌓인 재고만 판다. 2006년 100억원이던 연매출은 올 들어 1억원으로 줄었다. 30명이던 직원도 이젠 6명이다. 강씨는 "국내와 중국 업체들에 맞서 특허를 지키고 싶었지만 이제 힘이 다 빠졌다"며 "특허 지키기가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말했다.

에스보드를 시장에 내놓은 지 한달 뒤인 2006년 6월. 인터넷을 하던 강씨는 눈을 의심했다. 한 유명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에스보드 모조품이 정품(15만원)의 절반 가격인 7만~8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한국인 판매업자들이 강씨 회사의 제품을 샘플로 들고가 중국 공장에서 한달 만에 만들어 온 것들이다. 우유 대리점, 인터넷 설치업체가 판촉용으로 모조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모조품 가격은 2만~3만원까지 내려갔다. "만드는 중국보다 들여와서 파는 한국 업자들이 더 미웠습니다."

슬로비의 강신기 사장이 15일 KOTRA에서 열린 중국 모조품 전시회에서 자신이 만든 한국산‘진짜’제품과‘모조품’인 중국 제품을 비교해 보고 있다. 강 사장이 손에 들고있는 제품이 중국 제품이다.

다급해진 강씨는 국내 유통업체 50곳을 찾아 검찰에 고소했지만 손해 배상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잡고 보면 대부분 영세업체거나 사장이 신용 불량. 특허법을 위반한 이들은 200만~300만원의 벌금만 받고 끝났지만 그가 지난 4년간 쓴 소송비용만 20억원에 이른다.

중국산 모조품이 미국·유럽으로 팔려나가자 2007년부터는 중국의 모조품 공장을 찾아나섰다. 중국에서는 50여개 업체가 연간 300만개의 가짜 에스보드를 생산하고 있었다.

관세청에도 협조를 구해 단속도 했지만 모조품 수입은 줄지 않았다. 적발된 수입업자가 "특허권 침해 제품인 줄 몰랐다"고 하면 처벌하기 어려웠다.

2007년 강씨는 모조품 업체 가운데 품질이 가장 좋은 곳을 찾아가 "중국 내 판매권을 줄 테니 해외에는 팔지 말라"고 제안했다. 중국 내 월마트 납품까지 주선해줬다.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고육지책이지만 이렇게 해서 특허사용료라도 받자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중국 업체는 특허사용료를 한 번도 주지 않았고 지난해 계약은 파기됐다.

강씨는 "모조품도 문제지만 내 잘못도 있었다"고 반성했다.

"특허 소송에 집착하다 정작 우리 상품을 중국산 저가 복제품과 차별화하는 노력을 못했습니다. 신제품을 내놓을 타이밍을 놓친 것도 후회가 됩니다."

강씨는 최근 에스보드 뒤를 이을 신제품 개발을 마쳤지만 출시를 미루고 있다. 에스보드의 전철(前轍)을 밟을까 두려워서다. 그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고 해외에 특허만 파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특허만 넘기게 되면 제품을 팔 때보다 매출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한번 더 모조품과 싸우다간 연구·개발 의욕은 물론이고 재기 의지까지 사라질 것 같습니다."

[가짜 명품에서 가짜 항공기까지… '짝퉁'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