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조류독감)가 발생하면 전시(戰時) 상태 아닙니까? 규정대로 할 수 없을 때도 있고, (환경오염 같은) 다른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지요. 작년의 AI 방역은 사실 '경이적'인 기록입니다. 선진국에서는 200일은 걸렸을 텐데 우리는 단 42일 만에 끝냈잖아요."
농림수산식품부 방역 담당 공무원의 이 말은 역설적으로 AI 매몰지의 '2차 환경오염'이 왜 불가피했는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즉 감염 확산 위험을 막기 위해 '속도전'에 치중했을 뿐, 환경오염 걱정은 나중 문제였다는 것이다.
◆"비닐 파손이 2차 오염 유발"
가축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과 농식품부의 'AI 긴급 행동지침'엔 살처분한 가축을 파묻는 방식이 자세히 규정돼 있다. 약 3~5m 깊이로 판 구덩이 바닥에 비닐을 깔아 흙을 1m 높이로 덮고, 그 위에 숨진 가축을 2m 높이로 쌓은 뒤 소독용 생석회를 3㎝ 이상 뿌린다는 식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런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2004년 초 1차 AI가 발생했을 당시 방역 작업에 나섰던 지방공무원 정모(7급)씨는 "구덩이 바닥 전체를 덮을 수 있는 큰 비닐을 깔아야 하는데 그때는 작은 비닐을 여러 겹으로 깔았고 석회도 제대로 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비닐 사이로 침출수가 샐 수밖에 없어 당시에도 환경오염이 걱정됐다"고 말했다.
이산화탄소 등 가스로 가축들을 안락사시킨 뒤 매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이 역시 사실상 사문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 관계자는 "1~2차 AI 때는 물론이고 작년에도 닭·오리 등이 마대자루에 산 채로 담겨 생매장되는 사례가 전국에서 빈번했다"며 "가축들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마대자루와 비닐을 파손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침출수는 토양으로 천천히 스며든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하수에 닿게 된다. 일단 지하수까지 닿으면 오염물질이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지하수의 오염물질 확산 속도는 지하수가 어느 정도 깊이에서 흐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며 "보통 땅속 10m 이하의 얕은 깊이에서 흐르는 지하수는 빠르면 하루에 1m까지도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침출수 오염이 확산 중인 것으로 추정된 8개 지점 매몰지의 지하수는 땅속 4~8m 깊이에 있다. 이미 매몰지로부터 상당히 먼 거리로 퍼졌을 수 있는 것이다.
◆"전문가 급파해 매몰지 조사해야"
다행히 이번 조사에서 AI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사체(死體)가 부패하면 바이러스의 생존율은 떨어지기 때문에 "토양이나 지하수 등을 통해 동물이나 사람에게 AI 바이러스가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서울대 수의대 김재홍 교수는 말했다.
반면 다른 의견도 있다. 서울대 의대 A교수는 "사체 안에 있는 바이러스는 RNA(리보핵산)를 통해 번식력을 유지하는데 숙주(宿主)가 죽었더라도 어느 정도는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매몰지에 대한) 감시·관찰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바이러스가 아닌 각종 병원균이 생태계 먹이사슬을 거쳐 사람에까지 전염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제주대 이근화 교수(병원미생물학)는 "동물들이 묻힌 곳에선 살모넬라·캄필로박터균 같은 병균이 흔히 나타난다"며 "이 병균들은 동물에는 질병을 일으키지 않지만 음식물이나 물 등을 통해 사람에게 식중독·패혈증 같은 질병을 일으키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특히 매몰지와 그 인근의 오염된 토양에서는 땅속에 포자(胞子·홀씨) 형태로 존재하는 탄저균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커 자칫 치명적인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병원균의 종류와 존재 여부에 대한 정밀 조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경관리공단은 이번 조사에서 "(지하수 등에서의) 병원균 검출 여부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단 관계자는 "이번 조사의 주요 목적은 AI 바이러스가 검출되는지 여부와 침출수의 오염 확산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며 "병원균이 토양이나 지하수에 함유됐는지 여부는 애초부터 조사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고 했다.
서울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이영순 소장은 이에 대해 "(침출수 오염이 확인된 인근 지역에서) 밭·논일을 하는 농부나 개천에서 공사하는 사람 등은 병원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관련 전문가들을 매몰지에 빨리 보내 지하수를 수거해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