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난징 대학살 당시 중국인 포로를 살해하려 하고 있는 일본군.

"난징 대학살(南京大虐殺)을 자행한 일본 군인 중 40%가 한국인이었다." "상투머리를 한 조선인들은 아이들조차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대표적인 웹 사이트에 황당무계한 글들이 뜨고 있다. 일본군이 1937년 12월부터 1938년 2월까지 30만 명의 중국 포로와 시민을 학살한 '난징 대학살' 당시 일본군 중 상당수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바이두(Baidu), 신랑왕(新浪網), 구글차이나 등 포털에는 이런 내용을 실은 글이 수십 건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인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 난징 대학살의 한국인'(바이두 2006년 10월 17일) '역사 사실: 난징 대학살 중 일본군보다 더 잔인했던 한국인'(구글차이나 2008년 10월 3일)이다.

이 글들은 ▲당시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가 이끄는 15사단 소속 '조선인 부대'가 학살에 앞장섰는데 이들은 일왕에게 표창까지 받았고 ▲마쓰이는 훗날 도쿄(東京)의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이 사실을 증언했으며 ▲중국 침략에 가담한 일본군 250만명 중 한국 국적이 160만명이고 ▲재판 결과 한국 출신 148명의 전범이 유죄를 선고받아 23명이 사형당했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인은 일본인보다도 더 잔혹하게 민간인을 학살·강간했다는 현지인들의 증언이 있다" "한국인들은 일본에 적극적인 저항도 하지 않았고 사냥개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일본이 패전한 후에 10만 명의 조선인이 이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내용이 엇비슷한 이 글들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원래 행실이 비슷한 종자들" "과연 가오리방즈(高麗棒子·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라는 댓글까지 달리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정책기획실의 남상구 연구위원은 "한마디로 역사적 근거가 없는 유언비어이자 역사날조"라고 했다. 우선 시대적 상황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한국인이 일본군으로 동원된 것은 1938년 4월(육군)과 1943년(해군)의 지원병 제도를 통해서였고 징병제는 1944년에야 실시됐다는 것이다.

남상구 동북아연구재단 연구위원이‘난징 대학살의 주범인 당시 일본군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었다’이라는 허위 사실을 담고 있는 중국 웹사이트의 문서를 가리키고 있다.

육군 지원병제도에 의해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동원된 전체 한국인은 1만7364명에 불과했다. 일본 군부는 반란을 우려해 한국인을 주력으로 한 부대를 편성하지 않았고 일본인 부대에 분산 배치했다. 따라서 한국인이 40%를 점하는 부대나 한국인 3만 명으로 구성된 부대가 1937년 12월의 난징 대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된다.

남 위원은 "군사재판이나 난징 전범재판에서 한국인이 난징 대학살 전범 판정을 받은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했다. 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판결받은 한국인은 148명인데 이들은 1942년 8월 이후 강제 동원돼 동남아에서 근무한 포로감시원(129명)과 통역 16명, 필리핀 방면의 군인 3명뿐이었다.

1925년부터 1938년 4월까지 일본군 '15사단'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10만 명 비관 자살' 역시 사실무근이다. 동북아역사재단측은 "중국 학자들 중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며 "난징의 난징 대학살 기념관에 이 얘기를 했더니 그들도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 글들이 구체적인 듯한 가짜 자료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조선인 명단'이라는 첨부문서가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일본군 내 조선군 명단' '난징 대학살에 참여한 조선 군관 명단'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명단은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서 난징 대학살과는 관계가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조작해서 올리고 유포한 것일까? 바이두에 게재된 글에는 그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다. "역사적으로도 자랑할 것이 없는 이 민족(한국인)은 세계에 공헌을 한 것도 없다." "한국은 가장 성공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중국은 한국기업에 값싼 노동력뿐 아니라 잠재력이 큰 수출시장을 제공했으며, 한국은 한류(韓流)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한 전략이 됐다."

남 위원은 "글을 쓴 사람은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약간 있지만 전공자는 아니며 한국 기업 진출과 한류에 대한 반발로 혐한(嫌韓) 감정을 갖고 있는 인터넷 이용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네티즌들의 혐한 정서 확산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일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이런 글들은 일본 우익에게 '많은 책임이 한국인에게 있었다'는 엉뚱한 면죄부를 줄 수 있으며, 인터넷에서 확대 재생산될 경우 실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다고 남 위원은 지적했다. 한·중 관계에 지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