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규·산업부

"세금감면안 시행을 위한 전제조건인 노사관계 선진화가 충족된 것입니까?"(기자)

"그런 게 있었습니까? 그런 조건이 있다고 언제 얘기했나요?"(지식경제부 고위 관계자)

8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최근 논란을 빚어온 노후 자동차 교체 시 세금 70% 감면 방안에 대한 브리핑이 열린 자리에서 오간 대화이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기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지난달 26일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지원에 앞서 자동차 노사가 특단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노사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었고, 이윤호 지경부 장관도 "세금감면안은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전제조건 하에 추진되는 것"이라고 못박은 기억이 선명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자동차 노사가 획기적인 선진화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지원안은 어렵다는 얘기였다.

현대차 노사가 2조6000억원의 신기술 개발 투자와 생산라인 전환배치 등 조치를 내놓았을 때도 청와대와 정부는 "그것으론 부족하다. 임금동결이나 무분규 선언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불과 10여일 만에 정부는 스스로 내세운 전제조건과는 다른얘기를 하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전제조건이라는 표현은 안 맞는다.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말 자체가 애매모호하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세금감면안 발표 후 자동차 시장에선 '조건부 지원안'의 시행 여부와 시기를 놓고 큰 혼란이 일었고, 소비자들의 자동차 주문은 뚝 끊어졌다.

자동차 노사 간 새 합의가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노사관계와 상관없이 세금감면안 먼저 추진'이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안을 후진적 노사관행 개선의 지렛대로 쓰려다가 여의치 않자 스스로 원칙을 허물어 버린 것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파업 때마다 '원칙 대응'을 내세우다가 슬그머니 노조와 타협하는 모습을 되풀이해 왔다. 정부마저 스스로 세운 '전제조건'을 무너뜨리는 '무원칙한 대응'을 한다면, '노사관계 선진화'는 점점 더 요원한 '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