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10일 오전 11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용산 사고'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찰청장 내정자와 서울경찰청장 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12일 퇴임식을 갖는다.
그는 "공권력이 불법 앞에 무릎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경찰 조직 안팎의 요구가 많지만,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서 저 개인의 진퇴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이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김 청장은 정치권을 겨냥한 듯, "사회적 정의실현보다는 목전의 정치적 이익과 정략적 판단에 따라 여론몰이 식으로 경찰을 비난하고 불법폭력의 심각성보다 경찰의 과오만을 들춰내는 비이성적 습성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굳은 얼굴로 발표문을 낭독한 그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기자회견장을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직행했다. 김 내정자는 이번 참사 때 숨진 경찰특공대원 고(故) 김남훈 경사의 묘에 헌화하고, 순직한 경찰 간부들의 묘역도 참배했다.
김 내정자가 참배를 마치고 돌아서려던 순간 현지 경찰관 2명이 달려와 그의 앞을 막았다. 이들은 "경찰은 책임이 없다면서 왜 청장은 바꿉니까"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소리쳤다. 김 내정자는 눈물을 비치며 "고맙다"고 짧게 답했다.
김 내정자는 장인인 고(故) 강하영 육군 소장의 묘에도 꽃을 바쳤다. 그는 "개인적인 일정이지만 여기까지 와서 안 뵙고 갈 수 없다"고 했다.
김 내정자는 서울경찰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울 관악구 남현동의 경찰특공대를 찾았다. 그는 특공대원 70여명에게 "죽음을 무릅쓰고 불길 속으로 뛰어든 결과가 비록 비난 여론이라 해도 주저하거나 흔들려선 안 된다"며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것이 경찰 특공대의 운명이자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훈시를 듣는 일부 대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김 내정자는 서울로 돌아오는 도중 고속도로 한 휴게소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고(故) 김남훈 경사의 죽음은 다른 철거민 희생자 5명의 죽음과 다르다"며 "김 경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화염병이 난무하는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 생명까지 잃었다"고 했다.
그는 "국민들이 김 경사를 단지 용산 참사 사망자 중 한 명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앞으로 어느 경찰관이 국민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걸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겠느냐"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옷을 벗겠다고 결심하고 제일 먼저 김 경사의 묘역을 찾은 것은 부하를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죽음의 고귀한 의미를 국민들이 제발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내정자는 "전후(戰後)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던 일본은 1969년 도쿄대 야스다 강당 점거와 진압사건을 계기로 불법·폭력시위와 결별했다"며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은 한국이 왜 시위 문화만은 40년 전 일본을 극복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그는 "비록 나는 사퇴 하지만 이번 사건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