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와 전자기타, 베이스, 드럼, 색소폰, 키보드 등이 가득 진열된 가게들 사이를 오가는 이들 중에는 밤 무대 일로 생계를 꾸리는 고독한 색소폰 연주자도 있고, '내일은 스타'를 꿈꾸는 무명 뮤지션도 있다. 스쿨 밴드를 결성하자며 친구들과 온 학생들, "키보드를 선물해 달라"며 부모님 손을 잡고 온 학생들도 있다.

국밥 냄새가 코를 찌르는 식당 골목과 이웃한 거대한 성채 같은 건물 종로구 낙원상가, 그 안에는 대한민국 대표 악기상가가 있다. 이 낙원상가의 역사·문화적 값어치와 의의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단법인 '문화우리'와 시민들이 지난 7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낙원상가 도큐먼트'다.

늦가을 쌀쌀한 기운이 돌던 지난 1일 오후 1시. 종로2가 탑골공원 입구에는 어르신들로 북적이던 여느 때와 다르게 젊은이 30여명이 모여 있었다. 낙원상가 공개답사인 '낙원을 기록하다'에 참가한 시민들이었다. 문화우리 스태프들이 프로그램을 꾸미고 조정구 ㈜구가도시건축연구소 대표가 인솔한 시민 답사단은 탑골공원을 둘러본 뒤 한때 서울의 대표적인 게이 커뮤니티로 알려졌던 파고다 극장 자리를 지나 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남아있는 쪽방촌과 시장통을 거쳐 낙원상가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짜인 답사동선은 "노인, 성적 소수자, 절대 빈곤층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안식처가 알고 보면 서울 한복판에 자리했다"는 역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들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 대형마트' 격이던 낙원시장, 입으로 손으로 발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은 죄다 모아놓은 듯한 악기상가, 고전 영화 상영관으로 거듭난 허리우드 극장을 둘러봤다.

시민답사 프로그램‘낙원을 기록하다’행사 참가자들이 지난 1일 옛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낙원동 거리를 걷고 있다.

조정구 대표는 "낙원상가는 건축물 자체로서의 가치보다 그 안팎에 배어있는 역사·문화적 가치로서 평가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며 말을 이었다.

"낙원상가와 그 일대는 인사동만큼이나 보존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악기상가는 물론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허름한 식당들은 서울 시민들의 기억과 삶이 엉켜있는 장소입니다. '도시 미관이 나빠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금씩 고쳐 나가면 서울의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문화우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도심의 대형 건물에 대해 시민들과 답사·기록작업에 나선 것은 지난 3월 종로 세운상가에 이어 두 번째다.

'낙원상가 도큐먼트'는 지난 7월 아마추어 사진가 30여명이 상가 곳곳을 필름과 영상에 담는 기록작업을 시작하면서 첫발을 뗐다. 지난달 24일에는 인사동 거리 남쪽 야외무대 남인사마당에서 인디밴드들의 콘서트 '낙원을 노래하다'를 열며 활동을 공개했다. 이 공연은 19일 오후 3시에도 예정돼 있다.

1일 열린 공개답사 '낙원을 기록하다'에 이어 오는 22일에는 토론회 '낙원을 말하다'가 열린다. 답사 인솔자였던 조정구 대표와 홍성태 상지대 교수 등이 나와 낙원상가를 서울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참가자는 선착순으로 마감한다.

23일에는 시민들이 낙원상가와 주변 동네를 카메라에 담는 출사행사가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진행되고, 이달 하순에는 전문 사진작가들이 낙원상가에 터를 잡은 악기가게들을 작품으로 만들어 액자에 넣어 기증하는 행사도 열린다. 5개월 동안 진행된 각종 사진·영상들과 기록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는 다음 달 열릴 예정이다.

변윤호 문화우리 연구원은 "근현대 역사를 간직한 서울의 건물들이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잊혀지는 것은 건물이 낡아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며 "이런 건물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늘리고, 가치를 재조명함으로써 도심 명소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문의 070-7563-6911~2 www.culture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