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제2의 강남이 된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신도시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요." 17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작은 도로를 경계로 한쪽에는 3층짜리 단독주택이 줄지어 올라가고 있었다. 논 사이로 드문드문 공장이 서 있는 건너편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공사가 한창인 곳을 가리키며 "저쪽이 고덕국제신도시가 세워지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고덕국제신도시비상대책위원회(대책위) 최용철 사무국장은 쓰레기가 널린 낡은 건물과 빈 논을 가리키며 '이쪽'라고 말했다.

2008년 보상 완료, 2013년 완공 예정이었던 고덕국제신도시의 개발 계획이 늦춰지면서 신도시에 포함된 농촌마을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보상 일정에 맞춰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이자부담에 시달리고, 보상액이 적은 서민들은 개발이 시작되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며 발을 구르고 있다.

제2기 신도시 가운데 하나인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예정지. 논과 앞쪽 건물을 경계로 논 쪽이 신도시 예정지역이다. 토지가 수용되는 신도시 예정지 쪽은 추수를 끝낸 논과 낡은 건물이 방치돼 있는 반면, 예정지 바깥쪽에는 3층짜리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다.

신도시 소식에 25개 마을이 들썩했지만

고덕면 25개 마을에 개발 돌풍이 분 것은 2006년 9월. 주한미군기지의 배후 지역인 이 일대 17.48㎢가 고덕국제신도시로 지정됐다. 한국토지공사와 경기도시공사가 사업을 맡아 대학, 병원, 외국인학교 등을 갖춘 신도시(인구 13만5000명 규모)를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개발 특수를 노린 인구가 유입되면서 이 지역 인구는 2년 새 1000여 명이 늘었다. 대책위 최용철 사무국장은 "밤만 되면 자동 스위치로 불이 켜지는 집도 있고, (서울) 압구정동 아주머니들이 버섯농사를 짓겠다며 하우스를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컨설턴트'라고 불리는 브로커가 돌아다니면서 "보상을 더 받게 해주겠다"며 가짜 비닐하우스를 짓도록 부추기기도 했다. 이런 브로커들이 마을 사람들에게서 컨설팅비로 수백 만원씩 챙기고 있다는 게 대책위 설명이다.

결국 주민들이 나서서 불법 건축물을 짓지 말자고 다른 주민들을 설득하고, 가짜 건물을 경찰에 고발까지 했다. 보상액은 정해져 있는데 나무 몇 그루 심고 가짜 비닐하우스 세워봐야 제 살 깎아먹기라는 데 대다수가 공감했다.

"토지공사에서도 그래요. 불법 건축물이 이렇게 적은 신도시 예정지는 처음 봤다고."(한상영 대책위원장)

보상 연기, 신도시 차질 우려

하지만 당초 올해 말로 예정됐던 보상은 내년 상반기로 미뤄졌다가 최근 다시 내년 하반기로 늦춰졌다. 사업을 맡고 있는 한국토지공사 평택고덕사업단 박인서 단장은 "(미국의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 때문에 개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들에게 발행하는 토지개발채권의 발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 12월 말로 예정됐던 보상 일정에 맞춰 대출을 받았던 주민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부담에 힘겨워하고 있다. 동네에서 땅만 400마지기(1마지기는 150평)가 있어 부농 소리를 듣던 임모(47)씨는 요즘 은행 이자만 매달 600만원을 물고 있다. 신도시가 개발되면 당장 농사 지을 땅이 없기 때문에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충남 서산에 땅을 샀기 때문이다. 창고도 옮기고 농기계도 옮겼지만, 보상이 늦춰져 이자만 물게 되자 임씨는 최근 서산에 짓던 농장 공사를 중단했다.

대책위는 현재 이 지역 땅을 담보로 대출받은 가구를 전체(1500가구)의 15%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이 지역 기업에서 받은 대출까지 포함하면 전체 대출 규모는 1조4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총 보상액(3조6563억원)의 3분의 1이 넘는 돈이 이미 풀린 셈이다. 기업 가운데는 미리 다른 지역에 공장 부지를 샀다가 매달 2억원이 넘는 이자 비용을 물고 있는 곳도 있다. 참다 못한 기업들은 경기도 등 정부기관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탄원서를 내놓은 상태다.

"보상받아도 갈 곳 없어"

마을 토박이인 소농(小農)들은 개발이 되더라도 고향에 돌아올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한양대 등 외부인과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땅(전체 개발 면적의 약 50%)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걱정이 커진 상태다. 한상영 대책위원장은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100만원을 보상받더라도 개발 뒤에는 450만원 되는 땅에 들어와야 한다"며 "주민들이 개발 전후 비슷한 생활환경으로 수평 이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심이 흉흉해진 가운데 대책위는 오는 22일 지주(地主)들을 대상으로 신도시 사업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