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리나 강촌으로 MT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학과 깃발을 들고 모이던 역 광장 자리는 가림막이 둘러쳐졌고, 공사 현장 사무소가 들어섰다. 철도원들이 장비를 들고 분주하게 드나들던 선로반 건물은 그대로지만, 쭉 뻗었던 철길은 시멘트더미에 묻혀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지상 회기역과 지하 청량리역을 이어주는 지하터널 입구에서는 수시로 상·하행 지하철 전동차가 드나들었다. 철길 한 번 건너려 할 때마다 경고음과 함께 "위험하니 걸음을 멈추라"는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가 반복돼 흘러나왔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청량리 새 역사 공사장의 요즘 풍경이다.

2006년 5월 시작된 청량리역 업그레이드 공사가 반환점을 돌았다. 총무게 2만3000여t에 이르는 붉은색 철근들을 이어 붙인 웅장한 건물 뼈대가 모습을 드러냈고, 2년 뒤인 2010년 9월 기차역·전철역·백화점·문화시설을 한데 아우른 연면적 17만2645㎡의 대형 민자역사<조감도>가 탄생한다.

강원도 춘천·강릉·태백, 경북 영주·안동 등으로 떠나는 기차여행의 관문 청량리역은 시내 다른 큰 역에 비해 소박하고 낭만적 분위기로 여행객의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다른 역들이 으리으리한 민자역사로 탈바꿈한 것과 비교하면 이용객들은 여전히 비좁고 낡아빠진 역 시설 때문에 불편을 느껴 왔다. 1987년 사업주관자(㈜한화청량리역사)가 선정되고 1997년 임시 가건물 역사를 완성한 뒤 2006년부터 본격 공사에 들어가는 등 사업 속도는 비교적 더딘 편이었다.

민자 역사 건물은 크게 역무동(지하4층·지상6층), 백화점(지하4층·지상9층), 주차장동(지하4층·지상층)의 세 개로 구성된다. 여느 건물 신축공사처럼 맨 땅에 터를 파고 짓는 게 아니라 지금도 기차가 떠나고 도착하는 승강장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작업이기 때문에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 지난해 8월 공사장 중장비 사다리가 넘어져 승강장 지붕을 무너뜨리는 사고가 일어나 전철을 기다리던 승객 2명이 숨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공사는 기차와 전철이 다니지 않는 밤 시간대에 진행되고 있다.

완공을 2년 앞둔 서울 청량리민자역사 남쪽 부분은 이미 철골이 거의 올라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 오른쪽의 교각으로는 철길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놓이게 된다.

또 건물이 뒤덮게 될 승강장을 기찻길 방향에 맞춰 3분의 1씩 나눈 뒤 열차가 자주 서지 않는 지역부터 남쪽·북쪽·가운데 순서로 공사를 하고 공정에 따라 승강장을 이동하는 방식을 택했다.

청량리역도 서울·용산·영등포·안양 등 여느 민자역사들처럼 '백화점 밑 기차역'이 된다. 현재 옛 맘모스호텔 자리에 있는 롯데백화점 청량리점이 민자 역사로 옮길 예정이다. 건물 밑에는 승강장 8곳이 만들어진다. 지금은 무궁화호 열차로나 갈 수 있는 춘천·원주행 철도가 복선화 공사와 함께 모두 전철로 바뀔 예정이어서 새 청량리역 승강장은 앞으로 '강원도행 전철'의 시발역이 된다.

이상태 한화건설 현장 공사팀장은 "교통과 쇼핑 거점이 될 청량리 민자역사는 기존에 알려진 청량리역과 주변 이미지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자역사의 공식 개장은 2010년 9월이지만, 새 역의 맞이방(대합실)과 승강장은 그보다 앞선 2010년 2월 손님을 맞을 계획이다.

청량리역 주변 대중교통 체계도 전보다 좋아진다. 역 이용객들의 숙원이었던 중앙선 전철과 1호선 지하철을 직접 연결해주는 환승통로가 생길 전망이다. 청량리역은 같은 간판을 달고도 2개 노선(1호선·중앙선) 정차역이 따로 떨어져 있는 유별난 역으로 굳이 갈아타려면 소요산 방향의 다음역인 회기역을 이용해야 한다. 때문에 예전에는 청량리역에서 전철을 갈아타려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민자역사 지하에는 넓은 지하광장과 함께 1호선 청량리역과 중앙선 전철의 환승 통로를 새로 내기로 했다. 서울시도 비좁고 낡은 지하철 청량리역을 주변 뉴타운 개발에 대비해 2010년부터 업그레이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철길을 넘어 역의 앞길(왕산로)과 뒷길(배봉로)을 연결해주는 폭 18m 왕복4차선 도로도 만들어져 청량리역 일대 도로 사정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홍사립 동대문구청장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경원선의 금강산 방향 복구 및 시베리아 철도 연결 계획이 실현될 경우 청량리역의 위상은 서울의 대형 기차역 수준을 넘어서 북한과 러시아로 향하는 교통 요지로 격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