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하나가 개그 프로그램을 휘젓고 있다.
MBC TV '개그야'의 코너 '그렇지요'에서 개그맨 황제성(26·사진)이 연기하는 유치원생 '제성이'는 그의 설명처럼 "부모님의 시청지도 없이 어린이들이 함부로 화면에서 마주해선 안 되는 캐릭터"다.
멜빵바지 차림에 인형을 가슴에 꼭 품고 있는 모습만큼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선생님이 "우리 누가 청소 더 깨끗이 하나 놀이할까"라고 하면 "하여간 갖다 붙이면 다 놀이지요"라고 대꾸하고, "너 버릇없이 굴면 나중에 커서 어떻게 된다고?"라고 호통치는 아빠를 향해선 "아빠 꼴 나겠지요"라고 말한다. 인형 놀이를 할 때도 "신데렐라가 외계인 ET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이 쭈그렁탱이 ET야, 한 번만 더 내가 할부로 산 자전거를 몰래 들고 갔다간, 입에서 명세표가 나올 때까지 주름에 카드를 긁어주겠다'" 같은 얘기를 중얼거리는 식.
지난 5월 첫선을 보이자마자 실시간 검색어로 올라오던 '그렇지요'는 이제 '개그야'의 간판 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들이 따라할까 겁난다"는 항의도 만만치 않지만, 시청률은 초반 4~5%대에서 10%대로 반등하며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지난 8월 2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제성은 "바른말 고운말 학원을 다닌 덕분에 말투는 경어체를 쓰지만 말하는 내용은 여전히 버릇없는 어떤 꼬마 녀석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인사치레나 무관심도 풍자의 단골 소재. "친척 어른이 100원을 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아저씨 죄송합니다만 그런 푼돈은 받아봤자 주머니만 걸리적거리겠지요"라는 천연덕스런 대답이나, 밤새 아이가 접은 색종이 꽃보다 젊은 유치원 선생님에게 눈길을 주는 아빠를 보며 "정말이지 가끔은 색종이 대신 아빠를 접어버리고 싶지요"라는 제성의 대사는 외로운 만큼 계산적이 돼 버린 요즘 아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극 중에서 제성이가 밤마다 '신데렐라의 피 묻은 손톱', '텍사스 텔레토비 연쇄 살인사건' 같은 이상한 영화 보는 게 부모님이 밖에 나가고 혼자만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어느 때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크지만 관심엔 늘 목마른 아이들의 모습을 개그로 비틀어 봤어요."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4학년, MBC 개그맨 공채 16기 출신. 고교 3학년 때까지 전남 여수·순천에서 자랐다. 공채시험 땐 경험담을 활용해 쌍화탕을 테이크 아웃으로 주문해 먹는 농촌 된장남의 사연을 연기했다고. "전 순박한 어른들에게 사랑 받고 컸죠. '그렇지요'의 제성이처럼 외롭게 자랄 새가 없었어요. 너무 빨리 조숙해진 요즘 아이들 보면 참 안됐어요. 정말이지 좀 그렇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