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0시50분쯤 신촌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 서울서부지법 민사 12부 김천수 부장판사 등 재판부와 원고·피고측 변호인들이 하얀색 비닐 가운을 겉옷에 걸쳐 입고 소독비누로 손을 씻은 후 들어갔다.
이 병원에서 지난 2월 폐내시경 시술을 받다 식물인간 상태가 된 김모(여·75)씨 자녀들이 어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게 해 달라며 낸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가 환자의 상태를 직접 보기 위해 비공개 현장검증에 나선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김씨에게 "할머니"라고 불러보기도 하면서 김씨의 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주치의가 김씨의 다리를 만진 후 얼굴 표정이 변하는 정도, 고개를 돌리는 모습, 눈 깜빡임 등을 주의깊게 봤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김 부장판사는 "주치의로부터 김씨가 한 달 전부터 눈 깜빡임과 같은 반응을 자주 보인다는 설명과 함께 이것이 '대뇌가 외부의 물리적 반응을 해석해 반응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고 무조건반사일 수 있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이날 현장검증까지 실시한 이유에 대해 "아직 '안락사'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공론의 장(場)이 형성된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안락사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법원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라고 밝혔다.
20분 정도 현장검증을 한 재판부는 김씨가 중환자실로 오기 전·후의 주치의를 상대로 비공개 신문했다. 재판부는 병원측에 '가망 없는 환자의 퇴원 여부'에 대해 물었으며, 병원측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뇌출혈 환자를 환자보호자의 요구로 퇴원시켰다가 사망하자 의사에게 살인방조죄가 선고된 판결) 이후 의사 책임 문제가 더욱 커져 희망이 없다고 해서 퇴원시키기는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씨 가족측 신현호 변호사는 "식물인간 상태가 길어져 김씨의 의식이 돌아올 수 있는 회복가능성이 6개월 전 15%에서 현재 5%로 줄어들었다"며 "김씨가 주변 사람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깨끗한 임종을 맞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환자의 회복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치료를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김씨 자녀들이 지난 5월 초 회생 가능성 없는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해당 병원을 상대로 소송과 함께 낸 가처분신청은 최근 기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