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가리지 않고 차 많은 길목마다 출몰하는 도로 행상(行商). 길 막힐수록 매상이 오르는 이들에겐 휴가철이 대목이고 정체구간이 ‘황금어장’이다. 본지 기자와 대학생 인턴기자 두 명이 폭염주의보가 이어진 8월 초, 길 위 행상에 도전했다.

 첫째 날-“배에 칼 들어온다” 한 마디에 포기

차가 있는 한 친구에게 ‘꾸준히 막히는 도로’로 46번 국도를 추천 받고 춘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가평 부근의 악명 높은 상습정체구역으로 들어섰다. ‘분위기부터 살피자’는 생각으로 국도를 서성대길 30여분, 이글대는 아스팔트 위 가득한 차들과 30대 남자 행상 네 명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세워둔 트럭엔 오징어와 뻥튀기가 가득했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번쩍이는 선글라스를 쓴 이들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사전 취재 중 한 경춘국도관리소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영역 침범하면 배에 칼 들어오기 십상이니 말 안 거는 게 좋습니다.” 그의 조언이 생각나 오싹했다. “일단 철수하고 내일 다른 곳을 찾아보자”며 발걸음을 돌렸다. ‘길거리 영업’ 도전 첫 날은 그렇게 ‘선배 행상’을 쭈뼛쭈뼛 ‘관람’하는 것으로 접어야 했다.

둘째 날-첫 손님이 곧 마지막 손님

‘터줏대감’을 방해할 필요 없는 덜 알려진 정체 구역을 찾아, ‘도로의 특성에 맞는 물건을 팔아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물 장수가 있으면 뻥튀기를 팔고 오징어 장수가 있으면 탄산음료를 파는 식의 치밀한 전략을 짜보자는 계획이었다. 소형자동차를 동원했다.

광화문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어딜 가도 다 막힐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은 경부고속도로에서 무너졌다. 시속 100㎞로 정처 없이 질주하길 약 한 시간, 차는 어느새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1시, 98번 지방도 중간쯤 ‘제부도’ 이정표가 보였다. 해수욕장 가는 길 역시 잘 뚫렸다. 도로 주변엔 찰옥수수 파는 행상 몇 명이 나와 한적한 도로를 바라보며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이들에게 건진 건 생수 도매상 전화번호.

“한 상자 5000원에 스무 병 들었는데, 열 박스 이상만 팔아요.” 수원지역의 총판 담당자 유모씨는 5만원을 준비해서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수원대로 오라고 했다. 경기도 화성 제부도에서 수원까지는 약 한 시간 거리지만 최소 400원씩 하는 500mL 생수 한 병을 250원에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왜 이렇게 안 오냐. 20분 내로 안 오면 가버리겠다”는 총판 담당자를 어르고 달래 간신히 ‘찬바위 생수’ 200병을 떼서 트렁크와 뒷좌석에 가득 실었다. “시원한 걸로 갖다 주겠다”던 물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250원짜리 물을 1000원씩만 받고 팔면 한 병에 750원, 200병 다 팔면 15만원이 남는다는 계산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한 조개구이 식당에서 아이스박스 대용으로 쓸 스티로폼 상자를 얻고 그 안에 3000원짜리 얼음 세 봉지 채우고 물통 50여 개를 넣었다. “이제 막히는 길만 찾으면 돼.”

영동고속도로 마성 터널 부근, 에버랜드가 있는 마성 나들목, 경기도 광주와 분당을 지났지만 막힘은 없었다. 오후 6시 다 돼 간신히 찾은 ‘정체 구역’은 곤지암에서 광주 쪽으로 가는 교차로. 신호가 길어 빨간 불이 켜질 때마다 차량 30여대가 길게 늘어섰다.

“물 사세요. 시원한 물 사세요.” 밀집모자를 쓰고 헐렁한 반바지를 입었는데도 10분 만에 땀이 옷을 흠뻑 적셨다.

20대 젊은 여성은 눈이 마주치자 무섭다는 듯이 반쯤 열었단 창문을 닫아버렸다. 경적 소리가 나서 달려갔더니 40대 남성이 “우회전 해야 하는데 위험하니 비키라”고 소리를 쳤다. 트럭을 모는 한 30대 남성이 창문을 열고 “하나 줘 보라”고 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렇게 미지근한 걸 1000원이나 받고 팔면 어떻게 하냐. 얼려서 나와라”는 핀잔과 함께 물통이 되돌아왔다. 길 위에서 약 한 시간, 목이 탔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물통 하나를 따서 벌컥벌컥 마시는 순간 한 SUV 차량의 창문이 열리더니 “어이, 학생. 아르바이트 하는 건가. 어디 한 병 줘봐” 하며 스포츠 머리를 한 30대 남성이 창 밖으로 파란 1000원짜리를 내밀었다. 허리 굽혀 여러 차례 인사한 후 처음 거머쥔 ‘수입’을 주머니에 소중히 넣었다.

‘초심자의 행운’이 행상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이날 첫 손님은 결국 마지막 손님이 됐다. ‘내일 새로운 전략으로 도전하자’는 다짐과 함께 이날 장사는 오후 6시쯤 접었다.

 셋째 날-호두과자 ‘터줏대감’

‘얼음물 1000원’이라고 쓴 사절지 하드보드를 몸에 걸고 출발 시간을 오전 8시30분 앞당기는 게 이날 추가된 전략이었다. 밤새 냉동실에 얼려 놓은 생수 50여 개를 얼음이 든 스티로폼 상자에 넣고 전날 보아둔 제부도―수원 간 313번 지방도 공사 구간으로 직행했다. 너무 일러서인지 어제만큼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진 않았다. 내리쬐는 햇볕에 스티로폼 상자 안의 얼음물이 속절없이 녹아 내리는 게 보였다. 한 병도 못 팔았는데 뜬금없이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화장실 하나 찾을 수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길섶 수풀에 ‘실례’를 하고 비봉나들목 쪽으로 ‘터’를 옮겼다. 장소를 옮기는 길 한 주유소에서 목격한 ‘시원한 생수 무료’ 현수막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50대 김밥 장수 부부는 김밥을 직접 말아 오전 7시쯤부터 한 줄에 2000원씩 받고 파는데 “잘 되는 날은 하루에 20만원 정도 번다”고 했다. 부부는 “기초생활수급자일 정도로 집안이 어렵다”고 토로했지만, 얼추 계산해보니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적어도 300만원 매출은 올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김밥장수 부부가 철수하길 기다렸다가 오후 1시쯤 물을 팔기 시작했다.

앞뒤로 붙인 ‘얼음물 1000원’ 표지가 효과를 발휘했는지 신호로 멈춘 차 안에서 표지를 가리키며 웃는 얼굴이 종종 눈에 띄었다. 2차선 도로 옆을 오가며 “물 사세요”를 외친 지 10여분, 중형차 창문이 열리고 1000원짜리 한 장이 쑥 나왔다. 약 21시간 만의 두 번째 수입이었다. 이후 약 한 시간 만에 얼린 생수 11병이 팔려 나갔다. ‘좋은 목’임이 확실했다. “물 사겠다”는 뜻의 자동차 경적 소리와 창문 밖으로 살랑살랑 흔드는 1000원짜리가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졌다. 11병 모두 남성 운전사가 샀고 그 중에서도 트럭 운전수가 반이 넘었다.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섭씨 35.4도.

신나게 물을 팔고 있는데 고가 아래 세워둔 견인차에서 문신과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덩치 좋은 남성 두 명이 내리며 “여기서 뭐 하냐”고 물었다. ‘말로만 듣던 조폭(조직폭력배)인가?’ 그러나 이들은 의외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플라스틱 아이스박스에 드라이아이스 넣고 ‘쭈쭈바’ 넣어서 팔면 진짜 잘 팔린다”고 ‘조언’을 해줬다. 물 한 병을 건네자 “아이구, 팔아야지 왜 날 주나”며 손사레를 친 후 다시 견인차 안으로 들어가 낮잠에 빠졌다.

진정한 ‘방해꾼’은 ‘터줏대감’들이었다. 아침에 김밥 팔던 남성이 되돌아와 “이 학생들이 나 없다고 여기서 팔면 어떻게 하냐”고 화를 내며 비봉나들목 출구의 상도(商道)를 설명했다. “김밥은 매일 오후 2시 정도까지 팔다 철수하지만 그 후에 호두과자 장수가 바통을 이어받는단 말이지. 호두과자 장수가 좀 전에 왔다가 학생들이 파는 걸 보고 나한테 ‘당신이 심어 놓은 거 아니냐’고 화 내며 전화했더라고.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빨리 가.” 고개 푹 숙이고 “호두과자 아저씨 오기 전까지만 팔면 안될까요”라고 묻는 우리에게 그는 “차라리 수원 빙그레 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떼다가 한철 장사라 텃세가 덜한 해수욕장 가서 팔고 여긴 건들지 말라”고 몰아 세웠다. 다른 ‘목’을 찾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날 수입은 1만1000원. 차 트렁크엔 ‘팔아야 할 생수’ 188병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마추어에게 도로에서 물을 파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광화문에서 비봉 나들목 출구 교차로에 가서 매일 생수 40병을 팔 때를 기준으로 손익계산서를 만들어봤다.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거리가 멀어 기름값과 통행료가 만만치 않아 5일 동안 생수 200병을 팔아도 4만6000원 밖에 남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루 판매량이 25병을 밑돌아 200병을 소진하는 데 8일 이상 걸릴 경우 수익은 ‘마이너스’로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