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을 때가 많은데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그만 힘이 쭉 빠져버려서…." 90세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제자들로부터 노트북을 선물 받은 노(老)학자는 그렇게 말해 좌중의 웃음을 이끌었다. 2일 서강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동양사학자 우호(于湖) 전해종(全海宗) 서강대 명예교수의 90세 기념 논총 봉정식 자리에서였다.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전 교수는 '한국 근세 대외자료 연구' '한국과 동양' 등의 저서를 낸 국내 동양사학계의 1세대 학자다. 경기도 안양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전 교수는 자신이 봉직했던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서강대 사학과, 동양사학회에 각 1억 원씩의 장학금과 연구기금을 쾌척하기도 했다. 부친과 조부의 독립유공자 수당을 모은 돈이었다고 한다.
이번 봉정식에서도 전 교수는 보통 참석자들이 찬조금을 내는 다른 봉정식과는 달리 행사 비용 일체를 본인이 부담했다.
전 교수는 이 자리에서 "내 학문 인생에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60점"이라며 "골프 치고 약주하느라 10점, 7~8년 보직교수하느라 10점, 집중해서 연구하지 못해 10점, 방향을 잘못 잡아 10점을 깎아 먹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도 사마천의 '사기(史記)'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축사를 맡은 이춘식 고려대 명예교수는 "내가 한중 관계를 연구하면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분이 미국 학자 존 페어뱅크(Fairbank)와 전 선생님이었다"며 "30년 동안 한국·중국·미국의 여러 학자들을 봐 왔지만 선생님만큼 인품이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봉정식에는 차하순·이보형 서강대 명예교수와 오금성 서울대 명예교수, 이성규·박한제 서울대 교수, 김한규·최기영 서강대 교수, 권오중 영남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