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 한때 고구려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인구 23만명 이 사는 소도시에는 뜨거운 날씨 때문에 꽝팡즈(光膀子·웃통을 벗은 사람)들만 느리게 걷고 있었다. 하지만 시내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광개토대왕비 주변에는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유리 건물 안에 놓여있는 비석 주변으로 4대의 무인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고 중국인 관리인은 한국 관람객의 움직임을 쉴 새 없이 곁눈질했다. 조선족 가이드는 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학생들에게 경고했다.

"단체 사진은 되지만 현수막을 펼치거나 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일단 유리건물 안에 들어가면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이 불가입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국립 한경대 학생과 교수, 직원 149명이 광개토대왕비을 찾았을 때 비석 주변 어디에도 고구려와 비석의 내력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광개토대왕비는 전체가 1800여 자지만 지금 해독 가능한 것은 1600여 자뿐입니다. 처음 발견 당시 큰 나무라고 착각할 정도로 이끼가 많아서 이끼를 없애려고 소 똥을 바르고 불을 지르는 등 훼손을 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한 학생이 비석을 향해 카메라를 들자 일행 주변을 맴돌던 중국인 관리원이 소리치며 막아 섰다. 일행이 나가자 남자는 비석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잠가버렸다. 기계과 3학년 송낙원(25)씨는 "우리 민족이 남긴 유산을 보면서도 감시 받는 기분 때문에 불편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한경대 교수, 학생, 직원 등 149명이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 거의 매일 같이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니느라 다들 지쳐있었지만 맑은 하늘 아래 천지에 이르자 그 피곤함을 한 방에 날려버린듯 생동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

지난달 28일부터 8일까지 10박11일간 중국과 러시아를 찾은 한경대 대장정팀은 '불편한 현재'를 만나기도 하고 '미래의 가능성'도 엿봤다. 단동(丹東)에서 한 사람당 1만원짜리 보트를 탔을 때는 이름처럼 푸른 압록강 건너에서 관광객이 '담배 선물'이라도 던질까 강가를 서성이는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또 검은 흑룡강(아무르강)을 건너 러시아 아무르주 벨로고르스크의 '오르따 농장'을 찾았을 때는 미래 식량생산기지 확보의 필요성을 느꼈다.

한경대가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한 것은 2006년. 국제화를 핵심 목표로 내건 최일신 총장은 대학생들이 러시아와 중국을 돌아볼 기회를 얻어야 한다며 2억원을 들여 100명이 넘는 해외탐방팀을 꾸렸다. 전체 학생이 6400여명인 한경대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최 총장은 "8년 전 처음 러시아의 한 농장을 찾았을 때 그 드넓은 대지를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해외 식량기지 확보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만큼 넓은 땅을 보며 학생들이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3차 대장정에서 인천항을 출발한 한경대팀은 서해를 거슬러 중국 잉코우(營口)에 도착한 뒤 단둥(丹東), 하얼빈(哈爾濱), 헤이허(黑河)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속초로 돌아오는 6000㎞ 대장정을 마쳤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와 일제시대 독립군의 활동범위와도 비슷한 셈이다. 학생들은 백두산에 오르고 하얼빈시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돌아봤다. 최일신 총장도 대장정 중간에 잠시 합류해 아무르극동농업대학과 '극동 아시아 자원연구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법학과 3학년 윤윤미(여·23)씨는 "러시아횡단철도를 탈 때는 창 밖으로 똑같은 풍경이 30시간이나 이어져 놀랐다"며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국과는 전혀 다른 자연환경, 생활모습을 경험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조경학과 3학년 송한용(25)씨는 "일찌감치 러시아로 진출해 드넓은 농장에서 사료 작물을 생산하고 있는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던 해외식량기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단장을 맡은 장경만 학생처장은 "농업이나 공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서 대학의 활동 무대와 시각이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올해로 3회째 맞는 대장정을 바탕으로 해외 현장실습, 현장연수 등 해외 프로그램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