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갈비 메뉴로 이름이 높은 대형 음식점인 수원의 K갈비. 쇠고기 원산지 표시에 대한 단속이 시작되면서 최근 메뉴판을 바꿨다. 이 음식점 주인은 "이만하면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했지 않느냐"며 새 메뉴판을 보여줬다. '한우 생갈비(국내산), 생갈비(호주산), 뼈없는 미국산 생갈비, 비빔냉면(국내산 한우·호주산), 갈비탕(국내산 한우+호주산 쇠고기)'이라고 세세하게 표기한 스티커가 눈에 두드러졌다.

전날부터 쇠고기 원산지 표시가 전면 확대됐지만 이날도 혼선은 여전했다. 도내 대형 음식점들은 나름대로 원산지 표시를 실천하려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렇지만 표시 대상이나 방법을 잘 모르겠다며 고충을 호소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또 원산지가 표기된 메뉴판과 게시판으로 새로 교체한 곳은 드물었고, 서둘러 표기를 하느라 벽면 메뉴판에 종이 스티커를 덧붙이거나, 백지에 따로 써붙여 놓은 곳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한 갈비집. 갈비탕은 '호주·뉴질랜드산', 수육은 '국내산·호주' 등으로 병기했다. 벽에 붙은 메뉴표에는 갈비탕과 수육 등 육류 메뉴 옆에 조그맣게 매직으로 표기했고, 육우인지 한우인지 표시는 전혀 없었다. 종업원 정미경(45)씨는 "일주일 전쯤 벽에는 원산지 표기를 했지만, 메뉴판에는 따로 표시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음식점은 A4용지에 '쌀 국내산, 차돌박이 국내산 육우, 갈비살 호주산'이라고 손으로 써서 벽에 붙여 놓았다. 또 메뉴판 역할을 겸한 계산서 비고란에 갈비와 차돌박이만 원산지 표시를 일일이 볼펜으로 써 놓았다. 종업원 정모(29)씨는 "원산지 표시를 단속한다기에 급하게 손으로 적어 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쇠고기를 제외하고 반찬은 물론 돼지고기에는 아직 표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날까지도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은 음식점이 훨씬 더 많았다. 중소도시로 갈수록 "정부에서 설명을 들어본 적 없다" "장사도 안 되는데 귀찮다"며 볼멘 소리를 냈다. 평택시에서 가장 붐비는 평택역 부근 A김밥집. 소고기김밥, 모듬김밥, 비빔밥 등 6개 메뉴에는 원산지를 표시해야 하지만 식당 어디서도 표시를 볼 수 없었다. 주인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한다는 얘기는 봤지만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산지 표시를 제대로 몰라 표기가 뒤죽박죽인 곳도 있었다. 인근 B식당의 경우 육개장 메뉴에 종이로 '한우 육개장'이라고 표기를 해 놨지만 똑같이 원산지를 알려야 할 비빔밥 등 다른 메뉴에는 원산지 표시가 없었다. 종업원 신모(여·35)씨는 "비빔밥에 들어가는 소고기가 얼마나 된다고 원산지를 일일이 표시하느냐"며 "장사도 안 되는데 정부가 메뉴판 고치는 돈이라도 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음식점 주인들은 수입산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제대로 표기를 하면 손님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는 걱정을 많이 드러내기도 했다. 수원시 인계동의 한 김밥집은 이날까지도 벽에 붙은 메뉴에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았다. 주인 허모(여·46)씨는 "수입산 쇠고기를 쓰고 있는데 세세하게 표시하면 손님들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 같다"며 "뚝불고기처럼 고기가 들어가는 메뉴는 모두 뺄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큰 영향이 없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K갈비 대표는 "그동안 다양한 재료를 써봤지만 한우는 질기다는 불만이 나왔고, 호주산은 '풀 먹은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며 "미국산 쇠고기를 다시 내놓고 있는데 광우병 파동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은 쇠고기의 원산지를 미국산으로 표기한 곳은 보기 어려웠고 거의 호주산이 차지하고 있었다.

반면 한우 전문점은 원산지 표시제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한 식당 대표는 "우리는 한우만 판매해 고기 가격이 비싼데, 다른 고깃집은 한우와 수입육을 섞어 싸게 파는 경우가 있다. 원산지 표시제가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곳은 쌀과 김치, 쇠고기를 모두 국내산으로 쓴다는 내용만을 A4 용지에 프린트해 붙여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