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초안산의 석인상. 산길 곳곳에서 이런 석인 상을 만날 수 있다. 정지섭 기자

마치 경주 남산이 서울로 이사온 듯했다. 서울 노원구 월계동과 도봉구 창동 사이에 자리잡은 해발 100여m의 초안산. 잘 가꿔진 산책길과 나지막한 능선. 언뜻 보면 서울의 어느 곳에서라도 볼 수 있는 평범한 야산이다. 하지만 우거진 수풀과 바위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자 수백년 세월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조선시대의 석물(石物)들이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2일 오전 서울 노원구 월계동 월계고등학교 뒤편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군(사적 440호) 입구. "좀 안쓰럽죠?" 10년 넘게 이곳에서 분묘군 연구에 힘을 쏟고 있는 향토사학자 이정우(59) 노원내시문화연구회장이 가리키는 손끝에는 목이 뎅겅 잘려 넘어진 석인상이 뒹굴고 있었다. 완만한 경사의 북쪽 방향 등산로를 오르니 온갖 모양새의 돌 유적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봉분을 잃어버린 채 끝이 마모된 상석 뒤로 단아한 관복 차림의 어른 키만한 석인상 2개가 늠름하게 서 있다. 아래쪽의 산자락을 보니 가로 세로 높이가 족히 1m쯤 되는 상석 4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다. "전부 서쪽을 보고 있어요. 죽어서도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잊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정우 회장은 "초안산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내시문화의 성지이자 보고"라고 말했다. "처박혀 있는 것, 뒹굴고 있는 것, 잘려나간 것, 온전한 것을 다 합쳐 헤아려보니 석인상, 망주석(영혼이 자신의 무덤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돌 구조물), 묘갈(무덤 앞에 세우는 작고 둥근 돌 비석), 상석 등 분묘 유적만 1127개예요. 아마 절반은 내시들의 묘일 겁니다."

이 지역은 특히 내시들의 묘가 아주 많았으며, 일제 강점기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내시들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정상 부근에 새로 만든 잣나무 숲에는 목이 잘리거나 윤곽이 희미해진 석상 6곳이 한데 모여 있다. 큰 머리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인상들이 여기저기 우뚝 선 모습은 경주 남산의 석불이나 이스터섬의 거석상 못지않게 신비롭다.

18개의 석인상과 비석들이 들어서게 될 초안산 인근의‘조선시대 묘 석인상 전시공 원’조감도.

경찰 통신소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는 앙증맞은 꼬마 석상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깜찍하다. 하지만 사적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볼썽사나운 모습도 적지 않았다. 어떤 석인상은 얼굴이 땅에 반쯤 파묻힌채 배드민턴장에 처박혀 있기까지 했다.

노원구(구청장 이노근)는 올해부터 초안산 유적 정비에 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이곳저곳에서 볼썽사납게 처박혀 있는 석인상들을 한데 모아 월계고등학교 뒷편 비석골 근린공원 부근에 '조선시대 묘 석인상 전시공원'을 오는 7월쯤 만들 계획이다. 관복을 입은 문관 모양의 석인상, 앙증맞은 꼬마 석인상과 비석 등 15개의 석조 유물과 함께 공릉동 경춘선 철로변과 상계동 도선사 입구에 있던 석인상도 가져오기로 했다.

앞으로 수락산이나 불암산 등에 흩어져 방치돼 있는 석인상들도 꾸준히 찾아내 초안산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석조문화 유적지로 이름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초안산 유적의 관리와 정비방안에 대한 서울시의 용역이 오는 6월쯤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산자락 곳곳에 처박혀 있어 훼손될 우려가 많은 석인상과 비석 등을 말끔하게 정돈해 조선시대 석조 유적 야외전시장으로 꾸미고, '초안산 조선시대 분묘 박물관'도 짓겠다는 장기 계획도 마련했다.

이노근 노원구청장은 "TV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조선시대 내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초안산 유적은 인근 태강릉과 육군사관학교와 더불어 서울 동북지역의 관광자원으로 사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