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한테 극장은 안방, 집 같은 곳이었어요. 일생을 거기서 살다시피 하셨지요. 연극을 할 공간이 부족하다고 늘 아쉬워하셨는데… (하늘을 바라보며) '저 동네'에서 내려다보시면서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20세기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연출가 고 이해랑(1916~1989)의 장남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현대산업개발 부회장)은 29일 동국대 예술극장 앞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동국대 예술극장은 올 9월 '이해랑 예술극장'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해랑연극재단은 오는 7일 리모델링 비용 20억원을 동국대에 기부한다. 이방주 이사장은 "우리 5남매 중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동생이 기부금을 쾌척했다"며 "아버님 이름 딴 소극장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게 자식들의 오랜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이해랑은 동국대에 연극과가 생긴 1959년부터 1981년 정년퇴임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방주 이사장은 "연극이라는 게 고정수입이 없어 생활이 불안정했는데, 아버님이 동국대 교수가 되자 어머님이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연극 활동으로 바쁘실 땐 내가 동국대에 월급봉투를 타러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아버님은 저승을 '저 동네'라고 하셨어요. 거기서도 좋아하는 맥주 드시고 김동원·차범석 선생님 등과 연극하시겠지 생각하는데, 여기 '이해랑 극장'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 못하셨을 겁니다. 지난달에 형제들과 성묘 가서 말씀 올렸어요."
이해랑은 배우로 출발해 연출가로 대성한 연극인이다. 1947년부터 국립극단의 전신인 극예술협회(신협)를 이끌었고 1960~70년대엔 이동극장(移動劇場)을 만들어 전국을 돌며 연극을 보급했다. 1951년 국내 최초의 '햄릿' 공연을 연출(햄릿은 김동원)했고, 그 연극은 1989년 그의 마지막 연출작(햄릿은 유인촌)이기도 했다. 배우로는 주로 악역이나 조역을 맡았던 그는 후배들에게 "무대에서는 오직 현재가 중요하다. 순식간에 영혼을 불사를 수 있는 사람이 참연기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장남은 아버지를 "생전 큰소리친 적 없이 자상한 분"으로 기억했다. 아들의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같이 맥주를 마셨고, 당신이 연출한 연극을 보여주고 어떠냐고 묻곤 했단다.
동국대는 이해랑연극재단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무대와 객석, 조명 등을 리모델링하고 대학극장이 아닌 상업극장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로비에는 이해랑의 저서, 연출 대본, 공연 포스터 등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된다. 오는 9월 개관작으로 '세자매'(연출 이윤택) '갈매기'(연출 신영섭) 등이 공연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