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安重根) 의사의 하얼빈역 의거 직후 계몽운동가 백당(白堂) 현채(玄采·1886~1925) 선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안중근 전기(傳記)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서지학자인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최근 중국에서 입수한 '정미정변기(丁未政變記)'라는 제목의 고서를 25일 공개했다. 이 책의 한 장(章)을 차지한 '안중근전(安重根傳)'은 모두 34쪽 분량으로, 안중근의 출생과 성장에서부터 항일운동 활동,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 계획과 사살, 재판 과정과 사형까지 국한문체로 기록했다.

안중근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할 시에 중근이 활발한 기상으로 꺼리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침착하게 형장으로 나아가니, 이때 세계 각국 인사는 흉보를 듣고 비상강개(悲傷慷慨·슬프고 원통해함)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안중근이 죽은 뒤에 한국의 일반 민정(民情)이 경탄허희(驚歎噓�·몹시 놀라며 한숨을 쉼)하여 말하기를 '의사(義士)의 표범(標範·모범)이라' '희유(稀有·매우 드문)의 충신이라' 했다"고 썼다.

헤이그 특사 사건과 고종의 양위, 군대 해산, 이재명 의거 등 1907년 이후 일제의 침탈과 항일 운동을 기록한 이 책은 1910년 초의 상황까지 적음으로써 한일병합을 전후한 시점에 항일·애국 의식을 고취하기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는 "표제와 속지에 쓰여진 글씨가 백당 현채의 친필인 것으로 보아 그의 저술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말의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가이자 사학자·서예가였던 현채는 '동국사략' '유년필독'과 같은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번역서 '월남망국사'를 내 애국계몽사상을 고취했다. 그는 1910년 최남선·장지연 등과 함께 조선광문회를 창설해 고전 수집과 간행 사업도 벌였다. 1908년 이후 그의 많은 저서들이 금서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이 책을 썼더라도 공개적으로 출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 이사는 "안중근 의사가 의거 직후 이미 애국지사로 추앙 받던 존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