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한광고는 전교생 1000명이 조금 넘는 크지 않은 학교다. 하지만 오는 4월 한광고 강당은 지상360㎞ 높이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과 지상을 잇는 '통신기지'가 될 예정이다. 현재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이 항공우주연구원과 협의해 'ARISS School Contact(국제우주정거장 아마추어 무선통신 프로그램의 약자)' 한국 기지로 한광고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ARISS 프로그램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러시아 항공우주국(RASA)이 나서서 우주인들과 청소년들의 무선교신을 주선하는 프로그램. 2000년 12월 시작돼 전 세계 30개국 333개 학교·단체가 우주인과 교신했지만 한국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항공우주연구원 측은 "아직 러시아 측과 기술적인 협의가 남아 있다"고 말했지만 일단 ARISS 위원회는 한광고를 교신국으로 선정한 상태다.
러시아만 'OK'하면 전국에서 뽑힌 청소년들은 이곳 한광고에서 한국 최초 우주인 고산(31)씨와의 무선교신을 하게 된다. 작년 9월 우주인으로 선발된 고산씨는 올 4월 8일 오후 8시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러시아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나간 뒤 국제우주정기장에서 일주일간 머물 예정이다.
◆"고산 오빠랑 꼭 교신하고 싶어요"
"CQ('들리는 사람이 있으면 응답 바랍니다'라는 통신용어), CQ, CQ. 여기는 델타(D) 시에라(S) 제로(0) 인디아(I) 찰리(C) DS0IC 한광학원 무선국입니다."
지난 29일 오후, 한광고와 한광여고 학생 40명으로 이뤄진 한광학원 무선국 동아리방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모여든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이나래(17)양은 "우주인과 교신에 대비해 평소보다 자주 교신하고 있다"며 "설이 지나고 나면 위성 교신용 안테나도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예리(16)양도 "저 많은 카드에 꼭 우주정거장을 추가하고 싶다"며 동아리방 한쪽 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QSL('수신확인'이라는 뜻의 통신용어) 카드들이 잔뜩 붙어 있다. 호주, 남극, 북극, 바누아투 등 세계 180개 나라, 3500개 무선국과 통신을 하고 나서 각 국 무선국에서 보내온 카드들이다
◆윤상용 지도교사의 집념
우주인과 청소년들의 만남을 이끈 사람은 13년간 무선국을 지도해온 윤상용(43) 교사다. 1991년 한광고에 부임한 '윤리 선생님'은 우연히 아마추어 무선통신의 세계에 빠졌다. 1995년에는 학생들을 모아 '한광학원 무선반'까지 만들었다. 장비는 동료교사들과 윤 교사가 사비(私費)를 털어 마련했다. 얼마나 들었냐고 묻자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아… 이거 집사람은 모르는데, 중형차 한 대 값 정도 들었죠."
윤 교사가 우주인과 학교간의 무선통신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3년 전. "한국도 우주인을 보낸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곧장 미 항공우주국과 러시아 항공우주국,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ARISS위원회에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무선통신을 하면서 알게 된 김낙현 삼성전기 상무와 유재복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사무처장이 힘을 보탰다.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낸 끝에 ARISS 위원회측으로부터 'OK'메일을 받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하루에 15번 지구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이 한반도 상공을 지나는 시간은 대략 15분. 학생 한 사람당 채 1분이 안 되는 시간이 할애된다. 더구나 현재 우주정거장 스케줄이라면 새벽 2~3시에 통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 교사는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뒤 NASA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답변이었다."한국 학생들이 조금이나마 통신을 더 할 수 있게 우주정거장의 궤도를 수정하고 고도를 높여주는 방안을 러시아 항공우주국과 협의해 추진하겠다."
◆"한광학원 무선국 모르면 간첩"
한광학원 무선국의 명성은 이미 아마추어 무선통신 세계에서는 유명하다.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교육부총리상, 경기도지사상, 대한민국 최우수 청소년 동아리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전세계 80개국 3000여 무선국에 한국을 홍보했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하면서 한광학원 무선국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게 동아리 활동이 가능할까? 그런 걱정 때문에 고3담임이기도 한 윤 교사는 아이들의 경력을 입시에 반영하기 위해 각 대학에 공문을 보내고 동아리 학생들의 성적을 관리했다. 지난해 한광고에서는 6명이 카이스트에 합격했다. 일반고로는 가장 많은 학생을 카이스트에 합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중 절반이 무선국 출신이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을 하면 전파에 대한 지식이나 기계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연구심을 커집니다. 더구나 전 세계와 영어로 교신하기 때문에 어학실력도 쑥쑥 늘죠." 윤 교사는 "꼭 학생들과 우주와의 교신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며 "무선통신과 같은 과학활동에 예산이 조금이라도 지원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우주인 고산씨는 지난 1월 아마추어 무선통신기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우주에서 꿈을 실은 전파로 교신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