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인(文科人)과 이과인(理科人)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상대 쪽에 속하는 분야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이는 상대에 대한 심한 무지를 낳게 되고,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무지와 편견은 과학기술을 일반 문화로부터 더욱 심하게 유리(遊離)되게 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자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1969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화학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서울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1980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다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역사학 박사’였다. 2001년에는 서울대 교수직을 유지하면서 과를 ‘동양사학과’로 바꿨다. 작년부터는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원장도 맡고 있다. 한 마디로,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섭(統攝)을 체현하고 있는 과학사학자(科學史學者)다.
그는 지금처럼 ‘지식의 장벽’이 학문 세계에서 커다란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할 말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는 “과학 지식 자체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고, 결정을 내리는 것을 도와주는 정보를 제공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맹목적으로 지식만을 추구하고, 그 지식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원자탄 제조 계획이 추진됐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실제로 어떤 결과가 어떤 규모로 벌어질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과학 지식의 공부만이 아니라 과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관련된 문제’가 인문학과 긴밀히 연결돼 있음은 물론이다. 17세기 과학혁명 이전까지 동서양 전통 학문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