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亂世)에 영웅이 난다지만 호걸(豪傑)들이 뜨고 지는 곳이 대선판이다. 대선판은 벼랑 끝에 있다. 멀쩡하던 영웅이 하루아침에 추락하고, 심하면 뒤웅박 신세로 급전직하(急轉直下)한다.

올 초 국민 관심을 끈 쪽은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등 뚜렷한 후보 3명을 보유한 한나라당이 아니라 오히려 인물난에 시달리던 범여권이었다. 누가 범여권의 구원투수로 등장하느냐가 초점이었다. 작년 중반까지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렸던 고건 전 총리가 1월 조직과 자금 문제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범여권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2004년 2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으면서 차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했었다. 그가 빠진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한 사람이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이다. 노 대통령과 교육정책으로 갈등을 빚으면서 서울대 개혁을 이끈 데다 충청 출신이라는 점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한때 범여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조직·자금 부족에다 검증 안된 정치력, 각종 마타도어 등으로 4월 말 불출마를 발표했다. 고 전 총리와 정 전 총장은 최근까지도 범여권과 한나라당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범여권은 3월 '뜻밖의 우군(友軍)'을 맞았다. 한나라당 손학규 경선후보였다. 손 전 경기지사는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의원들을 줄 세우는 바람에 숨 쉴 틈조차 없다"며 탈당했다. 그 뒤 선진평화연대를 만들어 독자세력화를 모색하다 8월 범여권 신당 창당 때 합류했다. 초반엔 대세론을 탔지만, 경선이 무르익으면서 정동영 후보의 조직력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해찬 전 총리는 친노(親盧) 진영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신당 경선에서 유시민, 한명숙 의원과 후보단일화를 이뤘지만, 정동영 손학규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쳤다.

여권의 대주주이자 재야파의 간판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002년 때처럼 대중성과 지지율 열세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중도 포기했다. 여당이 거듭 '신장개업'을 하는 과정에서 김한길 의원 등은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뒤 불과 6개월간 '2차례 탈당과 3차례 신당 창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의 문국현 후보는 시민사회계와 범여권 일부의 지원을 받아 창조한국당을 창당했다. 그는 범여권의 대표주자를 노렸으나 기존 정치권의 벽에 부딪혀 탄력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 쪽에도 화제 인물이 많았다. 이인제 후보는 5월 민주당에 복당해 대선 삼수(三修)에 나섰다. 그는 2002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뒤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 자민련, 국민중심당을 돌고 돌아 8번째 당적을 보유하는 기록을 남겼다.

지난 대선 때 정몽준 후보 지지로 민주당으로부터 '철새'라는 비판을 받았던 김민석 전 의원도 5년 만에 민주당에 복귀했으나 경선에서 패했다. 그는 18일 최고위원을 사퇴하면서 정동영 후보 지지의사를 밝혔다.

조순형 의원도 기구하다. 그는 민주당 독자생존을 위한 대선 카드로 주목 받았으나 경선에서 이인제 후보에 밀려 중도 사퇴한 데 이어, 신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다 민주당을 탈당했다.

정동영·문국현·이인제 3인의 범여권 후보는 선거 막판까지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성사시키지 못했다. 민주노동당에선 권영길 후보가 심상정 노회찬 의원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세 번 연속 대선 후보 티켓을 따냈다.

본선보다 치열한 양자 경선을 치렀던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경선 승복약속을 줄곧 지키면서 이명박 후보 독주체제가 계속됐다. 그러나 11월 초 이회창 전 총재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보수 우파 세력에도 분열과 갈등의 조짐이 보였다. 대선 3수에 나선 이 전 총재는 출마 선언 전후 예상을 깨고 20% 안팎의 지지율을 얻었으나, 정계은퇴 번복과 새치기 출마라는 비판론에 시달려 지지율 하락에 직면해야 했다.

이회창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 고건 전 총리와의 4자연대를 제안했던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는 막판 이명박 후보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는가 싶더니 지난 3일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했다.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 이수성 후보는 투표 5일 전인 14일 사퇴하면서 "아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했다. 경제공화당 허경영,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한국사회당 금민 후보 등 군소 후보는 끝까지 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