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서울까지 구백 육십여 리,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하나이자 29개의 지선이 연결돼 있었던 길이 바로 영남대로(嶺南大路)다. 경상도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러 다니던 길이고,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가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보부상들이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넘었던 길이자, 임진왜란 때 왜군이 침략해 오던 통한의 길이기도 하다.
20년 전 ‘우리땅 걷기’ 모임을 만들어 우리 땅 방방곡곡을 훑었던 저자는, 옛 지도와 문헌들을 토대로 14일 동안 이 ‘민족의 대동맥’을 두 발로 걸어가며 이 책을 썼다. 그러면서 아직도 남아있는 옛 모습들을 더듬고, 길 위에 남겨진 역사와 문화를 이야기하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싣는다. 청도 석빙고와 선산 고분군, 계립령과 이천 용산동마을처럼 그 길을 갔을 때만 만날 수 있는 역사의 자취들이 있었다. 먼 길 걱정하며 밥을 내 주는 푸짐한 인심이 있었고, 아직도 밥값을 2000원만 받으며 불우한 이웃을 돕는 식당이 있었다.
옛길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저 아스팔트로 덮였을 뿐이었다. 구미시 산동면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열 여섯에 시집와서 여태껏 살았어. 저 길이 경주에서 서울로 가는 서울나들이 길이여. 옛날에는 저 큰 길이 없었고 다 수양버들이 덮여서 도랑으로 지나댕겼어. 초닷샛날 아침 아홉 시에 구미에서 시집을 오는데, 배 타고 산동으로 오니 오후 네 시쯤이나 되었던가?” 몇 시간이면 주파하는 ‘빠름’을 선택했다면 도저히 겪을 수 없었을, 살아있는 문화와 인정이 이 여정에 가득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길을 찾아서 걸어간다는 것은 생명보험을 들어놔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 밀양을 가다 보니 옛길의 잔도(棧道)는 지금 KTX가 지나다니는 터널로 바뀌었는데, 목숨을 걸고 그대로 통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30㎞ 이상 돌아가야 할 것인가? 평범한 포장도로를 걸어가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지방도나 국도 전체가 짐승들의 도살장으로 변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들, 특히 화물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은 사람의 몸마저 휘청거리게 만든다.” 고대 로마나 일본 에도 시대의 길들처럼, 옛길을 지금이라도 되찾고 보존해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