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20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기 전 언론을 향해 눈물로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법원의 심사를 앞둔 피의자가 혐의를 놓고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에 대한 영향력 행사 시도로 비쳐져 자칫 불리한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 전 비서관은 영장실질심사를 50분 가까이 앞둔 이날 오후 1시40분쯤 부산지검 현관에 나타났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는 준비해온 A4용지 8장 분량의 반박자료를 꺼내 읽었다.

정 전 비서관은 10여분간 건설업자 김상진씨와의 유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그는 특히 장모와 큰형과 형수, 대통령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억울하다’며 말을 잇지 못할 만큼 흐느꼈다.

그는 “(검찰이 증거라고 제시하는) 일방적인 진술과 그 내용도 알 수 없는 통화기록이 제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고,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게 측근 비리라고 우리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라는 대목에서는 턱으로 굵은 눈물방울이 턱 밑으로 뚝뚝 떨어질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정 전 비서관은 “제가 이처럼 목소리를 높일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며 “눈처럼 깨끗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다”고도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민원 받고 전화한 적 없느냐고, 남모르는 돈 한 푼도 받은 적 없느냐고 물으면 대답 못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정 전 비서관은 특수부 검사실을 들렀다가 곧장 영장심사가 열릴 부산지법 법정으로 향했다. 부산지검을 나와 법원으로 가는 5분여 동안 정 전 비서관은 입술을 굳게 다문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 전 비서관 뒤로 부산지검 수사팀 검사 2명과 변호인이 법정에 들어갔고 영장심사는 2시간 반 동안 치열한 공방 속에 진행됐다.

정 전 비서관의 눈물이 통했던 것일까.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염원섭 부산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0시20분쯤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며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부산 모 고등학교 출신인 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정 전 비서관의 고교 3년 선배이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 사이의 학연 등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고교 동문인 점을 염려해 영장판사를 바꾸는 게 좋지 않느냐는 의견을 법원에 전달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고교 동문이라는 점이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정 전 비서관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담당 검사실에서 결과를 기다린 지 5시간이 지난 오후 10시30분쯤 지친 표정으로 검찰청사를 나섰다. 정 비서관은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잘 모르겠다. 피곤하다”고 말했다. 그는 영장이 기각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내용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정 전 비서관은 또 ‘검찰이 영장에서 밝히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제시했느냐’는 질문에 “지금 말 하는 것은 (검찰에) 결례인 것 같다. 상황이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며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