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뮤지컬 시장을 지배한 작품은 ‘캣츠’다. 웃돈을 얹은 표가 나돌 정도였다. 공연계의 ‘큰손’인 기업 쪽 판매량도 많았다. 국립극장 공연의 경우 총 객석의 약 10%인 1만석을 기업들이 사갔다. 이게 다 초대권이다.
우리 기업들이 VIP고객에게 초대권으로 제공하기 위해 사들이는 표는 연간 약 10만장으로 추산된다. 금액으로 80억원 어치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이후 해마다 덩치가 불어나고 있다. 그런데 공연계 후원자 격인 그들의 구매는 비싸고 유명한 수입 작품, 대형 공연장에 편중되는 상황이다. 중·소형 작품이나 국내 창작 공연은 외면해 초대권으로 인한 ‘문화 마케팅의 역차별’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 대량 구매가 낳은 또 하나의 부작용은 ‘표값 거품’을 유도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가(高價) 티켓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많은 양의 표를 살 땐 보통 20~30%, 일부지만 많게는 40~50%까지도 할인을 받는다. 기업의 담당자 입장에서는 “12만원짜리 공연인데 협상을 잘해 6만원에 샀다”며 생색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몇몇 제작사는 표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책정해 놓고 매표 상황이 나쁘면 기업을 향해 ‘덤핑 표’를 내미는 상황이다. 이렇게 생긴 표값 부담을 일반 관객이 떠안고 있다.
은행·통신사·카드사 등 기업들의 공연 구매 패턴이 장기적으론 다양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기업 논리로 따지면 고객 만족도가 높은 공연을 선물하는 게 당연하다. 리스크(위험 부담)가 적은 ‘오페라의 유령’ ‘퀴담’ 같은 수입 명품 공연, 예술의전당 등 빅4 공연장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한 카드사의 문화마케팅 담당자는 “고객에게 초대권을 보냈는데 회수율(초대 관객이 그 공연을 보는 비율)이 떨어지면 공연 선택을 잘못한 것”이라며 “아무리 작품성이 있어도 초대권 들고 대학로 소극장을 찾아갈 VIP고객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라이온 킹’은 1년 만인 오는 10월 막을 내린다.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이 조기 폐막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업 판매의 실적 부진도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고 표값이 9만원인데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선물하기에) 너무 싸고, 할인폭도 작았다는 것이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공연 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과도기적 진통”이라며 “공연 제작사는 유료관객을 두려워하고, 기업은 작품에 대한 안목을 넓혀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의 대량 구매는 문화접대비 한도액의 일정 부분에 대해 손비(損費)인정을 해주는 정책이 발표돼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 공연 프로듀서는 “기업의 문화 마케팅도 이제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20~30대 여성의 취향을 고려하고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클립서비스 설도권 사장은 “기업은 고객 선별 작업을 해 맞춤형 공연 티켓을 제공하고, 제작사는 합리적인 표값 설계를 하는 쪽으로 부작용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궁극적으로는 협찬이나 티켓 구매가 아니라 공연단체에 대한 기업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