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7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의 집’. 저녁식사를 미룬 채 사무실에 남아 일하던 김해성 목사는 “악!” 하는 외마디 비명에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외국인 급식소, 외국인 근로자 전용 병원, 교회가 들어서 있는 5층짜리 건물이 순식간 연기로 가득 찼다. 불길은 3층 외국인 근로자 전용 병원 입원실 쪽으로 휘감아 올라갔다. 그곳에는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 환자 21명이 입원해 있었다.

이 병원 이사장인 김 목사는 환자를 구하려고 화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연기를 피해 지하실에 웅크리고 있던 중국 동포 할머니를 업고 나오자 검은 연기가 계단 입구를 막았다. 때마침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환자 10명을 침대보로 메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인명 피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김 목사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탓이다.

불은 중국 동포인 김모(50)씨가 3층 계단에서 용접작업을 하다가 일어났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받은 도움을 갚겠다”며 계단 난간을 고치다가 용접봉에서 튄 불꽃이 지하 1층에 쌓여 있던 매트리스에 떨어진 것이다.

2005년 7월 개원한 이 병원은 국내에 하나뿐인 외국인 전용 병원이다. 자원봉사 의사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돌봐왔다. 그래서 병원은 늘 적자다. 그래도 지난 3년간 8만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공장에서 입은 화상(火傷)을 내보이며 “내 팔, 불고기”라고 울먹이던 외국인 노동자, 의료보험 없이 병을 숨긴 채 고통 속에 살아오던 이른바 ‘불법 체류자’들이 이곳에서 병을 고쳤다.

하지만 화재 이후 이 병원은 입원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급한 환자가 아닌 10여 명은 집으로 돌려보냈다. 수술 일정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화재 연기로 3층 입원실이 온통 그을려 환자를 누일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다른 병원으로 가지 못한 환자들은 건물 4층에 있는 강의실 바닥에 임시로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다. 뇌출혈로 입원해 있던 중국 동포 박모(지린성 훈춘시·65)씨도 다른 병원에 갔다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4시간 만에 돌아왔다. “치료를 못 받고 돌아가는 환자들의 뒷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김 목사는 “나의 가슴도 검게 그을린 건물처럼 숯 검댕이가 돼 내려앉는 것만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