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유조선에서 1월의 찬 바닷물로 뛰어내린 지 30분. 구명조끼도 없이 튜브 하나에 3명의 목숨이 달라붙어 있었다. 기름불의 열기로 얼굴은 달궈지고 물에 잠긴 몸은 얼어붙었다. 아래 윗니가 부딪쳐 다닥거렸다. 여성 선장을 꿈꾸던 실항사(실습항해사) 김학실씨는 당시 스물 한 살, 푸른 나이였다. 세계의 미항(美港)을 다 돌아보고 그림 엽서를 사 모아야지 마음 먹었는데…. 죽음은 1인치 앞에 닥쳐 있었다.
크레바스(얼음과 얼음 사이 깊은 틈)에서 하룻밤을 보낸 박태원씨는 후배 한 명과 함께 칼날 같은 능선을 타고 텐산(天山) 산맥 최고봉인 포베다(7439m) 정상을 밟았다. 사고는 내려오는 길에 터졌다. 거친 눈보라에 후배는 탈진해 쓰러졌고, 무전기 배터리도 바닥났다. 잠을 자려고 판 구덩이가 무너지며 눈더미에 갇히는 불행이 겹쳤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난 그는 동상으로 발가락 열 개를 잘라내야 했다.
강변의 새나 벌판의 들꽃처럼 평범하게 살아오다 갑작스레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열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집이다. 공무원, 고속버스 운전기사, 신인 프로복서, 보험 세일즈맨, 건설 기사, 실습 항해사, 등반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다랐다 빠져나온 생존담이 생생하다.
경북 안동에 사는 김보현씨에겐 2002년부터 고이 보관해온 비행기 티켓과 손목시계가 있다. 아내에게 선물했던 그 예물시계는 10시 23분을 가리킨 채 멎어 있다. 김씨 부부는 2002년 4월 15일 오전 11시 23분 김해 돛대산에 추락한 베이징발(發) 중국 민항기 승객이었다. 138명이 사망한 참사였다. 처음엔 자리가 떨어져 있었던 부부는 양해를 구해 나란히 앉았고, 흡연석이라서 다시 앞자리로 바꾸려다 말았는데 그 선택으로 그들은 살아남았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1분 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체험들에 집중한다. 그 당시 삶의 날선 감각을 취재하기 위해 눈 쌓인 진부 계곡으로, 남해의 바닷가 마을로 달려갔다. 김학실씨가 병원 유리창 성에에 새겼다는 이름들, 발가락 없이도 매킨리 봉을 정복한 박태원씨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솟아났다. 사실관계는 그대로 밝히되 문학의 거푸집 속에서 빚어낸 논픽션이다.
랜덤하우스. 276쪽.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