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66)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논했던 일본의 저명한 문학비평가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문학’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 ‘자본론’이 노동자들에게 읽혀지길 바랐던 것처럼, 가라타니는 이 책(원제 ‘世界共和國へ’·2006)이 일반인은 물론 고등학생에게까지 읽혀지기를 바라고 썼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다음’ 단계를 전망했던 것처럼, 가라타니는 마르크스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의 공백을 채우기라도 하는 듯이 새로운 ‘세계 공화국’의 건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논리를 따라가 보자. 사회구성체의 역사는 마르크스가 말한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을 통해 봐야 한다. 마르크스는 ①씨족(원시공산제) ②아시아적 생산양식 ③고전고대(노예제) ④봉건 ⑤자본주의의 다섯 가지 사회구성체를 제시하고 미래에 도래할 사회구성체는 ‘사회주의’라고 말했다. 이 ‘5단계’를 가라타니는 ‘3단계’의 교환양식으로 압축한다. ①은 증여·답례, ②③④는 약탈·재분배, ⑤는 상품교환이다. 그렇다면 그가 기대하는 미래의 교환양식은? 상품교환이라는 위상에서 생겨난 자유로운 개인이 증여·답례적 교환을 회복하려는 미래사회, 바로 어소시에이션(협력·조합)이다.

그런데 국가란 공동체 내부의 계급이 권력을 잡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 가라타니의 시각이다. 국가는 공동체 내부의 증여·답례적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약탈·재분배에 의해 형성된다는 얘기다. 이렇듯 국가란 ‘다른 국가나 자본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국민국가의 윤곽을 흐리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강화한다. 도덕감정에 의거한 ‘분배적 정의’, 즉 복지국가식 자본주의 역시 국가와 산업자본을 강화할 뿐이다. 따라서 이제 ‘교환적 정의’에 해당하는 어소시에이션이 필요하게 된다. 어소시에이션은 한 나라 안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전쟁과 환경파괴, 경제적 격차와도 같은 중대한 문제들은 바로 ‘국가’와 ‘자본’에서 나온 문제들임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국가는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 의해 존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내부에서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이 그 주권을 ‘세계 공화국’에 서서히 양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을 진행해 각국에서의 ‘아래로부터의 혁명’과 서서히 만나야 한다.

이 책은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의 첫 번째 책이다. 2권 ‘역사와 반복’, 3권 ‘네이션과 미학’은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