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시인은 본질적으로 모두 떠돌이다. 몸은 떠돌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혼은 떠돌아다닐 수 있다. 등 길이가 몇천 리나 되는 붕새가 구만리 하늘을 날아간다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는 바로 위대한 영혼의 방랑이다. 작가와 시인의 생명의 본질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떠돌아다니고 찾아나서는 것이라고 하늘도 내게 소리쳤다.”
문화대혁명 시절, 젊은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강제로 농촌으로 보내졌다. 이른바 하방(下放). 그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공포의 깊은 연못에 밀어 넣어졌다고 술회한다. 교도소가 꽉 들어찼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됐던 많은 사람들이 농가의 외양간에 갇혔다. “깨끗한 것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갔다면 자신을 불결하게 만들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모든 중국인들은 실제로 외양간에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진흙탕 속에 빠진 것은 단지 네다섯 해 뿐이었지만 고향의 어른들은 여전히 한평생 진흙 속에서 삶을 꾀했고 해마다 비바람에 맞서 싸웠다.” 세상의 고통과 더러움을 피하지 않았기에, 그는 영혼의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 류짜이푸(劉再復·66)의 이름은 우리에게 '고별혁명(告別革命)'을 통해 알려져 있다. 당대 중국 최고의 철학자라는 리쩌허우(李澤厚)와의 대담집인 이 책은 20세기 중국사를 압도했던 '혁명'에 대해 '고별'을 선언했다. 류짜이푸는 그 대담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인류가 반드시 붉은 피로 이뤄진 강물에서 역사의 배를 앞으로 밀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말했다."
이런 말은 공허한 수사가 아니라 그 자신의 신산한 삶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문예이론가로서 문학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돼 버린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던 그는, 1989년 톈안먼 사태가 일어나자 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5·16 성명'에 참여했다. 젊은 시절 겪었던 '진흙탕'이 또다시 그의 눈 앞에 펼쳐졌다.
그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조국은 내 시야를 미행하지도 않았고 내 목구멍에 고함치지도 않았으며 나를 왜곡하는 신문과 잡지도 아니고 내가 말하는 것을 막는 건달과 악질분자도 아니었다고. 그리곤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제 그는 말한다. 국가로부터 쫓겨났지만[被國家放逐] 그것을 받아들여 스스로 쫓겨난[自我放逐] 경지에 이른 다음, 이제는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국가를 쫓아내 버린[放逐國家] 자유인이 됐다고.
면벽침사록(面壁沈思錄). 즉 '벽을 바라보고 사색에 빠진 기록'이다. 그 벽이란 꼭 실제의 벽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은둔은 산속에 숨어서도 가능하고 번화가에 숨어서도 가능하다. 왁자그르르한 도시가 한 폭 깨달음의 벽으로 변할 수도 있다. 철저한 은둔은 마음의 은둔이지, 몸의 은둔이 아니다." 좀처럼 한 쪽을 넘지 않는 책 속의 짧은 명상록들은 소요유의 붕새처럼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깊은 지혜들을 전한다.
그는 문자와 권력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려 했던 영웅과 유자(儒者)들을 경멸하며, '산해경' '도덕경' '홍루몽'의 질박한 감동에서 어린아이와도 같은 '참된 자아'를 찾아낸다. 그리고 허튼 지식과 모략들을 모두 털어낸 '장자'의 세계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수한 생명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는 이런 희소한 대지 위에, 한없이 넓은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의 한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삶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는 무척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문화대혁명이 끔찍한 이유는, 실제의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영혼을 모두 지옥으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었다. 폭력의 주체는 정권일 뿐 아니라 '민중'이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재난과 고통을 보면서 쾌락과 만족을 얻는 것이 중국에서는 오히려 평범한 일이라고 개탄하고, 군중이란 주저하지 않고 화를 내지만 그 뒤에는 어떤 일도 해내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질타한다.
역사가 언어로 씌어졌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그는 또한 말한다. 그것이 진짜 역사라고? 역사란 생명의 붉은 피, 땀과 눈물, 지혜, 감정과 사건으로 이뤄진 것인데, 역사책이란 역사가가 옛날에 있었던 일을 진술한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역사가 붓끝에서 이뤄진다는 잘못된 생각이 끊임없는 표절과 반목을 낳았다. 문화대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왜? 그 당시 홍위병의 바이러스성 언어는 여전히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의 폭격을 지겹도록 겪고 난 뒤에 그는 깨닫는다. 그리고 힘줘 말한다. "이제 나는 온갖 언어의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이 선전한 위대한 목적을 믿지 않는다"고.
류짜이푸, 리쩌허우 그리고‘고별혁명’
'고별혁명'(북로드)의 두 저자인 류짜이푸와 리쩌허우는 둘 다 '망명'의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리쩌허우는 "중국은 이제 혁명적 운동보다는 이성적 질서인 법과 제도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말하며 류짜이푸는 "또다시 혁명을 경배하면서 비분강개로 군중의 정서를 선동해 대륙을 살육의 내전으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1996년 홍콩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중국에선 금서 리스트에 올랐지만, 현대 중국의 사상적 지표를 보여주는 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류짜이푸의 책은 '얼굴 찌푸리게 하는 25가지 인간유형'(예문서원·원제 '人論二十五種')이 국내에 출간돼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에 새로 나타난 두 계층으로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는 벼락부자'와 '명품을 좇고 자극을 추구하는 현대적인 젊은이'를 들었다. 모두 물질적인 자극만 있을 뿐 인생의 근본은 모르는 '육체적인 인간[肉人]'에 속한다는 설명이다. 리쩌허우의 책으로는 '논어금독'(북로드) '학설'(들녘) '중국현대사상사론'(한길사) 등이 번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