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2007년 대선 구호는 ‘네버 어게인 2002년’(2002년의 되풀이는 절대 안 된다)이다. 한나라당 사람들에게 5년 전 대선은 악몽(惡夢)이다. 손 안에 거머쥐었던 승리가 마지막 순간 요술처럼 빠져나갔다. 지난 4년간 “그때 그 요술만 아니었다면…”이라며 분을 삭여 왔다. 이번에도 똑같이 당할 수는 없다는 각오다.
그래서 찾아낸 ‘용한 부적’이 한나라당 선거법 개정특위가 최근 쏟아낸 선거법 개정안들이다. 개정안 하나하나에 2002년의 쓰라린 사연 한 가지씩이 담겨 있다. 2002년 한나라당 후보는 ‘김대업 병풍(兵風)’을 비롯한 각종 의혹 부풀리기로 만신창이가 됐다. 그 풍(風) 시리즈는 결국 ‘뻥 시리즈’로 드러났다. 한나라당은 이번에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당선은 취소할 수 있다’는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대선을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다. 이것이 결정적 승부처였다. 그래서 ‘정당 간 후보단일화 토론회는 방송하지 못한다’는 개정안이 나왔다. ‘선거기간 중 촛불집회를 금한다’는 조항은 2002년 반미(反美) 촛불시위가 친노(親盧) 진영에 동력을 제공했던 기억 때문이다. ‘선거와 관련된 용어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로 할 수 없다’는 조항은 2002년 대선 흐름이 친노가 장악한 사이버 여론에 의해 좌우됐던 피해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 “행정수도 공약으로 재미 좀 봤다”고 했다. 거꾸로 한나라당 입장에선 ‘쓴맛’을 본 셈이다. 한나라당 2007년 대선 주자들은 쓴맛 방지용 선제공격에 나섰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한반도 운하건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륙횡단 열차페리 공약이 바로 그런 용도에서 나온 기획 상품이다.
한나라당에게 2002년이 악몽이라면, 여권에게 2002년은 돌아가고픈 추억이다. 지금 여권 앞에 펼쳐진 현실은 암담하다. 한나라당 두 주자의 지지율 합이 60%인데, 거론되는 여권 주자 7, 8명의 지지율을 다 합해도 10% 내외다. 5년 전 기적이 또 한 번 필요한 것이다. 여권의 2007년 대선구호는 ‘어게인 2002년’(2002년이여 다시 한 번)이다.
그래서 필요한 목록 1호가 ‘2002년 이벤트’다. 5년 전 대선 때 여권은 국민참여 경선과 노무현·정몽준의 여론조사 단일화라는 두 차례 정치쇼로 선거판을 흔들었다. 여권은 올해 경선의 국민 참여비율을 50%에서 10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정당후보는 당원들이 정한다는 정당정치의 원칙쯤은 흥행을 위해 미련 없이 내던졌다. 멀쩡한 당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선거가 임박했을 때 다시 뭉쳐 ‘눈물의 클라이맥스’를 끌어낸다는 시나리오도 짜놨다.
두 번째 목록은 ‘2002년 선거구도’ 복원이다. 여권의 호남 표밭에 충청 표밭을 보태 한나라당을 영남에 고립시키는 전략이다. 열린우리당은 4·25 재·보선 대전 서을(西乙)에 출마하려던 자기 당 후보를 주저앉히고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를 지원했다. 충청 출신 정운찬 전(前) 서울대 총장에겐 애절한 눈길을 계속 보내고 있다. 모두 충청 표밭을 여권 몫으로 끌어내겠다는 계산 때문이다.
‘2002년 이벤트’와 ‘2002년 구도’를 되살리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지금 여야 후보 간격은 자력(自力)으로 뒤집기 버거울 정도로 벌어졌다. 한나라당 후보의 뒷덜미를 잡아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권 사람들은 “2002년형 네거티브 한 방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보낼 수 있다”는 주문(呪文)을 외며 위안으로 삼는다.
대한민국은 2007년 너머 10년 후 비전을 제시해줄 지도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2002년 대선 궤도로 되돌아가 5년 전 승부를 복기(復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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