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여권(與圈) 의원들의 단식 농성으로 소란스러웠다. 본청 건물 2층 정문 왼쪽과 오른쪽에 열린우리당 탈당파인 천정배 의원과 임종인 의원이 각각 단식 농성용 천막을 설치했다. 3층 본회의장 앞에는 이날부터 단식에 들어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모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를 내걸고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27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한미 FTA 반대 단식농성에 들어간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여권 대선주자들 단식 러시

이들의 단식 농성 현장엔 취재진은 물론 여권 및 민주노동당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김근태·천정배 의원을 찾아 격려했다. 김근태 전 의장은 28일 개성을 찾는 정동영 전 의장에게 "나는 여기서, 정 전 의장은 개성에서 지렛대가 되자"고 했다. 마치 'FTA 반대'와 '평화공세'를 통해 기사회생의 기회를 찾자는 다짐처럼 들렸다.

정동영·김근태·천정배 세 명은 노무현 정부에서 모두 장관을 지냈고,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이며 또 올해 대선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다.

범여권의 실세(實勢)인 이들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부에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FTA 문제에 애매한 입장을 보이다, 갑자기 돌아선 것이다.

여권에서도 비판론

열린우리당 정장선 의원은 이날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정치인들이 머리 깎고 단식하는 게 과연 좋은 것이냐"고 했다.

윤호중 의원도 “협상을 시작할 때는 국무회의에서 반대하지 않던 분들이 이러는 게 적절한 것이냐”고 했다.

수도권의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대선) 지지율이 안 오르니까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단식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 밑에서 장관을 지냈던 범여권의 대권주자들이 일제히 FTA 반대를 외치며 단식 농성하는 것은 표만 생각하는 대선용 정치쇼”라고 했다.

현 정부에선 與圈에서 단식 빈발

김 전 의장은 이날 "불과 얼마 전까지 집권 여당 의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단식농성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정치인의 단식은 군사독재에 맞선 야당의 ‘최후의 저항수단’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언로(言路)가 통제된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민주화·인권 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로 가택연금돼 있던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다. 하지만 당시 군부의 보도통제로 방송 뉴스는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고, 신문들은 ‘재야인사의 식사문제’ ‘현안’ 같은 표현으로 상황을 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90년 ‘내각제 포기, 보안사 해체’를 요구하며 13일간 곡기를 끊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뤄졌고, 정치적 의사표시 방법에 제약이 없어졌지만 정치권의 단식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정치 쇼’ ‘구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고, 과거와 달리 공감을 얻지도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무현 정권 출범 후 여권(與圈) 인사들이 단식하는 일도 빈발하면서 ‘무늬만 여당’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FTA 찬반 따라 여권 분열될 수도

전문가들은 “FTA 반대 단식 농성을 통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지도 반전을 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최근 한미FTA에 대한 반대여론이 점점 높아지자, 여권 주자들의 입장이 변하고 있어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권 내에서도 정세균 의장을 비롯한 현 지도부와 친노(親盧) 진영이 FTA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어, 여권 상황이 FTA 찬반 입장에 따른 2차 빅뱅(big bang·대폭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