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석희곡상은 지금 여기 없는 작가가 힘껏 불어온 입김 같다. 겨울엔 더 추운 연극동네, 특히 극작가들에겐 ‘공모+공연’ 패키지인 이 상의 탄생이 더 따스하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작가의 언어를 공연으로 검증받을 수 있어 기쁘다”(김명화) “차범석 선생님 이름이 걸린 상의 존재만으로도 격려받은 기분이다”(김한길) 같은 반응들이다. 차범석이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꿈을 꾸던 서울 수서동의 37평 아파트가 차범석희곡상의 밑천(7억원)이 됐다. 박명성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서울연극협회장) 등 연극인들도 십시일반 정성을 보탰다. 고인의 장녀인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은 “자가용·휴대전화·신용카드 없는 ‘3무(無)’의 삶을 살다 가신 아버지는 불편해지는 걸 싫어했다. 집에 가득했던 책과 연극자료는 돌아가시기 전에 대불대학 등에 기증했고, 집도 이렇게 처분해 후배 극작가들을 위해 쓰자는 게 아버지 뜻이었다”고 말했다.
'작가 차범석'은 2007년 더 바쁘다. 2월 2~4일 한일연극교류협의회가 일본 도쿄에서 여는 낭독공연에도 그는 초대됐다. 작품은 분단과 전쟁을 드라마로 승화시킨 대표작 '산불'이다. 그는 생전에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토속어를 살리려고 아키타(秋田)에 민박집까지 구해뒀다고 한다. 그러나 병마가 그 길을 막았다. 이번 '작가와의 대화' 시간엔 작가를 대신해 연출가 임영웅이 무대에 오른다. '산불'은 또 6월에 국립극단 공연(연출 임영웅)이 잡혀 있고, '산불'에 뿌리를 둔 뮤지컬 '댄싱 섀도우'는 7월 예술의전당에서 세계 초연된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차범석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극단 산하 대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예술원 회장 등을 지냈다. 조선일보와는 1955년과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부문 가작과 당선작을 내며 인연을 맺었다. 한 작가가 2년 내리 같은 신문의 한 장르에 도전, 등단한 건 이례적인 일. 1993년엔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작고 며칠 전 "내 이름을 건 희곡상을 조선일보와 만들었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작가는 은퇴가 없다"며 조로(早老)를 경멸한 차범석은 별세 6개월 만에 차범석희곡상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차범석연극재단은 희곡상 운영 외에도 전집 출간, 연극제·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내 목적은 오로지 연극"이라고 했던 고인의 뜻을 이어간다. 또 목포에는 올해 차범석 기념관과 차범석 거리가 생길 예정이다.
지난 29일 조선일보사에서는 차범석희곡상 첫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문순 조선일보 발행인)가 열렸다. 연출가 임영웅·손진책, 극작가 윤대성, 배우 전무송·강부자, 연극 평론가 유민영,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하철경 미술협회 전 이사장 등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이날 운영위에서는 매년 9월까지 장막 희곡을 접수해 고인의 생일인 11월 15일 무렵 시상하고, 이듬해 6월 6일(고인의 기일)을 전후해 공연하기로 결정했다.
10대에 최승희의 무용을 보고 '무대와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될 것 같다'는 운명을 직감했다는 극작가. 엉터리 연극(연극인)을 야단치는 큰어른이었고, 즐거운 자리에선 춤과 함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님은 먼 곳에'를 불렀고, 자리가 파할 땐 후배들에게 폐가 될까봐 날렵하게 사라졌던 그의 그림자가 차범석희곡상으로 다시 너울너울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