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정신이 나갔다”, “의원들이 법 내용도 모르고 표결하느냐…”.
여야가 지난 22일 예산안을 처리키로 해놓고, 그 전제조건이 되는 세법(稅法)을 부결시켜 예산안 처리가 무산되자 정치권에 온갖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세법이 통과 안되면 예산의 세입(歲入) 규모가 정해지지 않아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여야는 매년 세법안을 함께 처리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여당 의원 일부까지 세법안에 반대·기권표를 던지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벌여졌다. 법안 내용을 몰랐거나, 지역구 표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뒤늦게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열렸지만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원칙에 따라 한 번 부결된 법안은 같은 회기 내에 다시 제출할 수 없었다. 결국 1월 9일까지 회기가 잡혀 있는 임시국회를 이날 중단하고, 26일 새로운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22일 밤에 무슨 일이?
조세특례법안은 기업 등에 3조원대의 세제 혜택을 신설·연장하고, 6000억원대의 세금 혜택을 축소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여야 합의로 재경위를 통과했고, 본회의 처리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한나라당 박계동 의원 등 126명이 갑자기 이 법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택시 LPG 특소세를 폐지하는 내용을 추가한 것인데, 이날 재경위에서 이미 부결된 내용이다. 택시기사들한테 생색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막판에 ‘끼워넣기’를 시도한 것이다. 박 의원은 ‘금관의 예수’라는 운동권 가사까지 읊으며 특소세 폐지를 주장했다.
수정안에 대한 표결은 예상대로 부결됐다. 그런데 이어진 원안 표결에서도 찬성 107, 반대 90, 기권 25표로 부결됐다.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과 민노당 의원까지 반대·기권했다. 본회의장은 술렁거렸다. 여당 의석에선 “누가 반대한 거냐”는 탄성이 나왔고, 이해찬 전 총리는 의석에서 뛰쳐나와 “의원들이 예산 관련 법안도 숙지 못하고 있었느냐”고 했다.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여당이 반대해서 세법이 부결되는 난센스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얼떨리우스’들이 사고쳤다”
조세특례법에는 열린우리당 의원 10여명이 반대·기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거나 법안 내용을 착각했기 때문이다. 기권한 한 호남 의원은 “특소세 폐지도, 원안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안 내용은 잘 몰랐다.
원내 관계자는 “법안 한 번 제대로 보지 않은 ‘얼떨리우스’들이 사고를 쳤다”고 했다. 한 수도권 의원은 “정계개편에 여당 의원들 정신이 팔려있기 때문 아니냐”고 했다.
또 한나라당은 여야 합의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택시기사 표를 겨냥한 LPG 특소세 폐지 수정안을 밀어넣었다가 부결되자 여야가 합의한 원안까지 반대하는 오기를 부렸다.
여야는 24일 이번 사태를 놓고 서로 ‘상대편 책임’이라며 공방을 벌였다. 이에따라 26일 예산안 처리전망도 불투명해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