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사건의 영장과 재판 내용을 대법원 주요 간부에게 보고하도록 한 대법원 예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 대법원이 20일 “국가 기강이 무너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반박,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변현철 대법원 공보관은 서울중앙지검이 전날 예규 폐지를 주장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에 대해 “기관으로서 검찰이 그런 자료를 낼 리 없다고 생각하며, 일선 수사담당 부서가 오버한 것으로서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검찰이 마치 비밀을 입수한 것처럼 말하는데 대법원 예규는 원래부터 공개된 것”이라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검찰 간부들은 이에 대해 “대법원 예규는 전두환 정권이 사법부를 통제하기 위해 83년 만들었다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다”면서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 취임 후 대법원의 관료화·권력화가 가속화했다”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법조계 안팎의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일선 법조인과 학자들은 대법원 예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헌법 전문가인 이석연 변호사는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이 개별 법관의 재판 내용을 일일이 보고 받는 것은 판사의 자유로운 심증 형성을 왜곡해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을 해치고 사법 관료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전 공보이사는 “여론과 사건 관계인 등 외부로부터 재판 독립도 중요하지만 법원 내부로부터 독립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명시적인 상부의 지시나 강압이 있다기보다는 스스로 자기 검열의 부담을 질 수 있다”고 예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 예규는 법관의 독립과는 무관한 순수한 사법행정 차원”이라고 반박했다.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백승헌)은 성명을 내고 검찰이 대법원 예규 폐지를 주장하는 등 영장 기각에 반발하는 것은 “법원의 고유 권한에 대한 월권(越權)”이라며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