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별세한 극작가 차범석(車凡錫)을 기리는 ‘차범석연극재단’이 19일 발족식을 열고 출범했다. 차범석연극재단은 내년부터 ‘차범석희곡상’(당선작 상금 3000만원)을 운영하고 전집 출간, 연극제·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연극에 대한 고인의 뜻을 이어갈 예정이다. 재단 이사장은 고인의 장녀 혜영씨가 맡았다.
“지금도 연극인들이 모일 때면 어디선가 차 선생님이 불쑥 나타날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처럼 시대가 혼란할 때 선생님 같은 어른이 계셔야 하는데…. 더욱 선생님이 생각나는 어제오늘입니다.”
이날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발족식에서 연출가 임영웅씨는 재단 출범 배경과 추진사업을 설명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차범석재단이 펼칠 가장 큰 사업은 국내 최고 상금을 내건 차범석희곡상. 기성·신인 가리지 않고 신작 장막희곡을 공모, 고인의 생일인 매년 11월 15일 무렵 시상할 계획이다. 당선작은 또 공연지원금(2000만원)을 받아 이듬해 6월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되므로 부진에 빠졌던 극작가들에게 큰 격려가 될 전망이다.
차범석은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당선된 뒤 ‘산불’ ‘손탁호텔’ ‘옥단어’ 등 60여 편의 작품을 쓴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이었다. 특히 ‘산불’은 분단과 전쟁을 드라마로 승화시킨 대표작이다.
연극평론가 유민영(단국대 석좌교수)씨는 “차 선생은 ‘산불’부터 ‘옥단어’까지 사실주의 연극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성(城)을 쌓은 분”이라며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작품 제목처럼 그렇게 자신을 소진하면서도 박수칠 때 떠났다”고 말했다.
이날 발족식에는 이준 예술원 회장, 영화감독 김수용, 극작가 신봉승·노경식·윤대성, 소설가 이세기,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 배우 백성희·전무송·박정자·김성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신선희 국립극장장, 하철경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이종훈 한국연극협회장, 이종덕 성남아트센터 사장, 최태지 정동극장장, 천정배 국회의원 등이 참석했다.
극작가 신봉승씨는 고인의 장례식을 회고하며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 가고 정승이 죽으면 문상 안 간다’는 게 세상 이치인데, 차범석 선생은 문상객이 많은 정승이었고 큰어른이었다”고 했다.
고인의 대표작 ‘산불’은 내년 7월 세계적인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과 작곡가 에릭 울프슨을 만나 뮤지컬 ‘댄싱 섀도우(Dancing Shadow)’로 다시 태어난다. ‘빚 없는 인생을 살자’가 좌우명이었던 극작가는 후배 연극인들에게 그림자로 남아 어른어른 춤을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