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소설가 리온 포이히트방거는 1937년 소련을 둘러본 뒤 기행문을 남겼다. 극우 나치정권에 몸서리쳤던 탓일까, 그 반대편으로 인식됐던 공산체제에 포이히트방거는 일방적 찬사를 보냈다. "소련 인민들은 행복한 표정이다. 인민 전체가 만족하며 산다." 그러나 1937년은 스탈린의 '공포 정치'가 시작된 바로 그해다. 비밀경찰은 마구잡이로 반동분자 낙인을 찍어 총살형을 집행했다. 소련 주민들은 "체제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생존을 위해 쓴 가면(假面)을 포이히트방거는 '행복한 표정'이라고 읽은 것이다.
미국의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1984년 소련 전역을 돌며 부흥 집회를 가졌다.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공산당 기관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련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설교했다. 소련의 종교 자유에 문제가 있다면, 미국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모스크바 감옥에 수감 중이던 블라디미르 포레시는 이 기사를 읽고 한탄했다. "그레이엄 목사, 당신은 소련 지도부가 동원해 준 수만 명 앞에서 신나게 설교했겠지만, 나는 열 명도 안 되는 사람에게 그리스 정교를 가르치다 7년 형을 살고 있다오."
"소련 인민이 행복해 보인다"거나 "소련 인권이나 서방 인권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바깥 세상 사람의 한마디는 소련 독재정권엔 응원가였지만, 소련 반(反)체제 인사들에겐 가슴을 후벼파는 비수(匕首)였다. 포이히트방거의 기행문, 그레이엄 목사의 인터뷰는 소련 붕괴 후 소련 반체제 출신 인사들에 의해 '과거사' 심판대에 올랐다.
한국에 햇볕정책이 있다면 냉전시대 미국엔 대소(對蘇) 유화정책인 데탕트가 있었다. 데탕트의 주역 키신저 미 국무장관은 "소련 인권 문제는 동·서 긴장완화와 맞바꿀 정도로 시급하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키신저의 이런 입장은 소련 민주화 세력의 투쟁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낙담한 이들은 모스크바 비밀아지트에서 모의 재판을 열곤 했다. 판결 내용은 "소련 인권 문제가 시급하지 않다고? 키신저 장관, 당신이 소련에 와서 한번 살아 봐"였다.
현 정권 사람들은 북한 인권에 대해 갖가지 어록을 남겼다. 인권위원장은 "(북한과 한국 어느 쪽 인권 상황이 더 나쁜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고 했다. 여당 국회의원은 "북한 정치범 얘기들을 하는데, 정치범 없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다는 시민단체 인사는 "북한 주민은 정신적으론 풍요롭게 산다"고 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우습게 아는 척해야 진보(進步)로 대접받는 세상이다. 그러면서 '김정일 정권 구하기'에는 목을 맨다. 그래야 할 이유가 있다. 김씨 세습체제가 무너지면 '행복해 보였던' 북한 주민들의 진짜 표정이 드러난다. 이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함부로 뱉어놨던 말들은 모두 '과거사' 도마에 오르게 될 것이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는 요즘 '꽃놀이패'를 즐기는 상황이다. 구속 안 되면 물론 좋고, 구속되면 순교자로 추서될 테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강 교수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법정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마음속에서 내릴 심판이다.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 "해방 직후 남한 사람 77%가 공산체제를 원했다"는 강 교수의 말을 북한 주민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먹을 것이 없어 며칠씩 굶주린 사람에게 "단식하면 건강에 좋잖아요"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혹시 북한 땅 어느 비밀아지트에선 '강정구 모의재판'이 열려 이런 판결이 내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김일성 체제로 통일됐어야 한다고? 강 교수, 당신이 북(北)에 와서 한번 살아 봐."
(김창균 논설위원 ck-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