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사원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활동비가 너무 적어 사장 못해 먹겠다는 내용이었다. "활동비 1000만원 가지곤 아무 일도 못한다. 부사장에게 일부 권한을 넘기는 대신 부사장 활동비를 함께 쓰겠다."
며칠 후 사장은 다시 편지를 썼다. 이번엔 회사 활동비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가 분열된 건 사원 직급별로 활동비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제도를 고쳐 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렇게만 되면 사장직에서 물러나겠다."
문제는 사장 말대로 제도를 바꾸면 사장 활동비가 500만원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사원들은 헷갈린다는 반응이다. "1000만원도 모자란다고 했다가 이제는 500만원으로 줄이겠다니…. 사장 진심은 뭐야."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聯政) 제안은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대통령이 처음엔 "여당 의석이 너무 적어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없다"고 하더니 요즘은 '여당 의석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선거제도에 목을 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처음 연정을 제안한 것은 지난 7월 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에서 대통령이 법도 고치고, 경제도 살리는 건 비정상"이라고 했다. 야당에 권력 일부를 넘기고 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런 엄청난 결심을 한 이유는 여당의석(146석)이 과반(150석)보다 4석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대통령은 내용이 바뀐 연정 제안을 내놨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에 야당이 동의하면 권력 절반을 넘기겠다"는 거였다.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란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정답"이라고 조기숙 홍보수석과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최근 TV에 나와 동시에 밝혔다.
독일 제도는 비례대표를 지역단위로 뽑기 때문에 예를 들어 'TK 대표' 명찰을 단 열린우리당 의원이 나오게 된다. 지역 싹쓸이가 완화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반면 이 제도는 소수정당이 얻은 표가 사표(死票)가 되지 않도록 정당별 의석을 정당 득표율대로 배분하기 때문에 그만큼 원내 제1·2당 의석은 줄게 된다.
가령 작년 총선 때 독일식처럼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했다면 열린우리당 117석(38.3%), 한나라당 109석(35.8%), 민노당 40석(13.1%), 민주당 22석(7.1%), 자민련 8석(2.8%), 무소속 3석이 됐을 것이다. 작년 총선 때 152명이었던 여당 당선자 수가 독일식 제도에선 35명이나 줄어드는 것이다. 지역구도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독일식이나 중·대선거구제는 다당제를 전제로 한 것이라 현재 제1당인 여당 의석이 주는 것은 필연적이다.
대통령은 자신이 했던 두 말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할 처지다. "여당 의석이 과반에서 4석 모자라서 대통령 노릇을 못하겠다"는 처음 입장과 "(여당 의석은 더 줄어들겠지만)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제도를 만들어야겠다"는 둘째 입장 중 대통령 진심이 어느 쪽인지 밝혀야 하는 것이다. 요즘 청와대는 여소야대에 대한 불평보다는 선거제도를 바꾸는 쪽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여소야대에선 대통령 노릇을 제대로 못한다"는 처음 주장은 취소하고 거둬들이는 것이 도리다.
만일 대통령 희망대로 선거제도가 독일식으로 바뀌면 새 제도에 따른 총선은 대통령 임기가 끝난 직후인 2008년 4월 치러진다. 차기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바꿔 놓은 선거법 때문에 심각한 여소야대 의석을 안고 임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후임 대통령에겐 '과반에서 수십 석 부족한 여당 의석'을 취임 선물로 준비해 놓고 노 대통령 자신은 "여당 의석이 과반에서 4석 부족해 못해 먹겠다"는 불평을 계속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김창균 · 논설위원 ck-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