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출범한 98년 2월 25일부터 정당 출입을
시작했다. 민주당의 전신이자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회의가 담당
출입처였다. 그때 기자들은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빴다. 조세형(趙世衡)
총재권한대행은 아침 7시마다 여의도 당사 옆 양지탕 집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조 대행은 그날 그날 뜨거운 쟁점에 대한 여권 입장을 설명하곤
했다. 기자들은 이 '양지탕 브리핑'을 통해 국정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아침 8시반 당직자 회의가 끝나고 나면 정동영(鄭東泳)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았고, 주요 당직자들도 수시로 나타나 국정 홍보에 열을
올렸다. 기자실 구석엔 소파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그곳도 늘
'만원'이었다. 중진급 의원들이 번갈아 자리를 차지하곤 "나만큼 DJ를
아는 사람이 없는데…"라며 정국에 대한 해설을 늘어 놓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제각각 국정을 논하다 보니 혼란도 적지 않았다.
'DJ의 말'은 일자일획(一字一劃)도 오류가 없다는 당시 여당 분위기로
인해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여당 사람들에겐 새로 출범한
정권을 내가 만들어 간다는 열정이 있었고, 그래서 출입기자 들도 역사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흥분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권 초기인 요즘, 기자는 다시 집권당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에선 5년 전 이맘 때의 열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점판을
거둬들인 시골 장터처럼 한산하고, 심지어 맥빠진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민주당에서 유일하게 동력(動力)이 느껴지는 건 일주일에 두어 차례 당
개혁안을 놓고 신·구주류가 격돌할 때다. 회의가 끝나면 문석호(文錫鎬)
대변인이 "오늘도 특별히 합의된 것은 없다"는 브리핑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들은 무엇이 쟁점인지도 알 수 없는 '그들만의 게임 룰'을
놓고, 여당 관계자들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논쟁을 두 달째 이어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국회에선 대북송금 특검법과 이라크 파병안 등 두 가지
쟁점이 있었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요청한 특검법 거부권 행사는 노
대통령이 무시했고, 노 대통령이 '국익을 고려한 결단'이라고 호소했던
파병안에 대해선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이 절반에도 못 미쳤다.
청와대는 이런 민주당을 향해 "좀더 눈을 크게 뜨고 정치를 해 달라"고
못마땅해 하지만, 민주당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힘을 실어 줘야 여당
구실을 할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다.
새 정부의 국정 운영을 설명하고 홍보하는 민주당 의원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다. '우리 참여정부' 혹은 '우리 노 대통령' 등 현
정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표현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어쩌다 기자실을
찾은 구주류 의원은 노 대통령의 측근들을 공공연히 비난하는가 하면,
신주류의 한 당직자는 몇몇 장관의 이름을 거론하며 "솔직히 인선에
문제가 있었죠?"라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얘기한다.
이같이 청와대와 당이 따로 노는 현상에 대해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당정 분리가 됐다는 긍정적인 신호 아니냐"고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당정 분리'는 대통령이 총재직을 갖고 당을
꼭두각시 처럼 조종하면 안 된다는 뜻이지, 정부와 여당이 정국 운영에
대해 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당의 정책
프로그램을 갖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 대통령은 앞에서 끌고
당은 뒤에서 밀며 가는 것이 '정당정치', '책임정치'라는 민주주의
원칙의 근간이다.
요즘 여의도에 여당은 없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은
막았지만, 우리가 이겼다는 생각은 안 든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말이
그런 분위기를 잘 전달해 주고 있다.
(金昌均 정치부 차장대우 ck-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