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功과 過
후보 검증위원회는 서울시장 양당 후보가 공인(公人)으로서 남긴 발자취를 ‘3대 성공과 최대 실패’를 통해 알아봤다.
검증위는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의 성공은 70년대 해외 건설 붐 선도 기업인으로 구(舊)소련 등 북방(北方)진출 강남 개발, 한강 둔치 건설 구상 등을 선정했고, 최대 실패로는 96년 4월 11일 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을 뽑았다.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의 경우는 우수한 의정활동 국회의원 선거 ‘최연소 당선’, ‘최다득표’를 통한 정치적 세대교체 학생 운동으로 민주화에 기여한 점 등을 3대 성공으로, 2001년 민주당 쇄신파동 당시 불투명한 정치적 거취를 최대 실패로 각각 선정했다.
이 후보는 정치권 입문 전 현대건설 최고 경영자로서 남긴 각종 개발 신화가, 김 후보는 정치권 입문 후 주목받은 의정활동이 각각 큰 자산인 셈이다.
전문가 59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응답 151명)도 이런 선정 내용과 일치한다. 양 후보의 업적을 ‘가장 뛰어나다’를 5점으로 “1~5점으로 평가해달라”는 설문에 이 후보는 정치권 입문 전은 4.04점의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정치권 입문 후는 2.98점으로 ‘보통(3점)’을 밑도는 평가를 받았다. 김 후보는 정치권 입문 전 3.23점에서, 입문후에는 3.53점으로 평가가 나아졌다.
‘3대 성공과 최대 실패’의 선정은 먼저 후보 자신이 꼽은 리스트를 받아, 이를 과거 언론보도를 통해 검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후보들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조선·동아·중앙·대한매일·한겨레 등 5개 일간지와 월간조선 신동아 등 12개 시사잡지에 90년(시사잡지는 95년) 이후 실린 두 후보에 관한 기사를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KINDS(Korea Integrated News Database System)를 이용해 검색, 대조했다.
후보자들이 꼽은 성공 사례는 검색내용과 대부분 일치했다. 반면 이 후보가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사업을 당초 내주장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던 것”, 김 후보가 “의약분업 실시 초기에 나타났던 혼선”이라고 각각 꼽은 최대 실패 사례는 언론보도엔 관련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후보 관련 1000건 신문기사 중 341건은 96년 4·11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 후보의 비서가 “이 후보가 총선에서 선관위 신고 비용보다 최소 6억8000만원을 더 불법 지출했다”고 폭로한 것으로, 이 후보는 이와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김 후보는 890건의 기사 중 60건이 2001년 민주당 내 쇄신파동의 와중에서 김 후보가 다른 쇄신파 의원들과 달리 당 주류인 동교동계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등 거취가 불투명했다는 기사였다.
이 후보는 ▲말레이시아 페낭브리지 건설사업(현대건설 재직 시절)
▲이라크 및 구(舊)소련과의 수교에 기여 ▲한강 고수부지 개발안 제공을,
김 후보는 ▲연구하는 의정(議政)활동상 수립 ▲헌신적인 민주화운동 ▲국민
경선제 성안(成案) 등 정치개혁 및 정당민주화에 기여한 점을 자신의 3대
성공으로 각각 꼽았다.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조선·동아·중앙·대한매일·한겨레 등
5개 일간지와 월간조선 신동아 등 12개 시사잡지에 90년(시사잡지는
95년) 이후 실린 두 후보에 관한 기사를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KINDS(Korea Integrated News Database System)를 이용해 검색해본 결과,
이 후보가 꼽은 3대 성공은 보도 내용과 대체로 일치했다. 김 후보는
890건의 관련 기사 가운데 45건이 한보 청문회에서의 활약, '한국
유권자 연맹 선정 최우수 국회의원상' 등 의정활동에 관한 것이었고,
서울대 학생회장 등 민주화 운동 경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김
후보가 꼽은 민주당 국민 경선제를 김 후보의 업적으로 보는 보도는
없었고, 대신 '96년 총선 최연소 당선자' 등 젊은 정치인으로서 역대
총선에서 선전한 것이 46건이나 됐다.
한편 최대 실패로 이 후보는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사업을 당초 내
주장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던 것"이라고 답했고, 김민석 후보는
"의약분업 실시 초기에 나타났던 혼선"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언론보도엔 관련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 후보 관련
1000건 신문기사 중 341건은 96년 4·11총선 당시 '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 후보의 비서가 "이 후보가 총선에서
선관위 신고 비용보다 최소 6억8000만원을 더 불법 지출했다"고 폭로한
것으로, 이 후보는 이와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의원직을 자진
사퇴했다.
김 후보는 890건의 기사 중 60건이 2001년 민주당내 쇄신파동의 와중에서
김 후보가 다른 쇄신파 의원들과 달리 당 주류인 동교동계에 동조했다는
취지의 기사였다. 200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식에 참석한 다음,
단란주점에 들러 물의를 일으켰다는 기사도 6건 실렸다.
우리나라의 정치, 행정 분야 전문가들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는 기업가적 경영 마인드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반면, 민주당 김민석(金民錫) 후보는 갈등 조정 및
중재 능력이 상대적인 강점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일보 후보 검증위원회(위원장 오연천·吳然天 서울대
행정대학원장)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정치·행정 분야 중심의 대학교수,
연구소 연구원, 기타 전문직 종사자 529명을 대상(151명 답변)으로
서울시장 후보의 분야별 역량에 대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이 후보는
기업가적 경영마인드에서 0.52점, 김 후보는 갈등 조정 및 중재 능력에서
0.18점의 가장 높은 평가를 각각 받았다.
설문조사는 서울시장에 필요한 역량으로 ①대외 교섭력 ②갈등
조정·중재 능력 ③정책 및 행정의 전문성 ④조직·인사·재정관리 능력
⑤기업가적 경영 마인드 등 5개 분야를 제시한 뒤, 각 후보의 매우
뛰어난 역량엔 2점, 뛰어난 역량엔 1점, 보통인 역량은 0점, 취약한
역량엔 -1점, 매우 취약한 역량엔 -2점을 각각 부여토록 했다. 최종
점수는 각 후보의 5개 분야 평균 점수를 0점으로 표준화해 산출했다.
따라서 이 수치는 각 후보별로 '어느 역량은 상대적으로 뛰어나고, 어느
역량은 상대적으로 취약한가'를 평가하는 지표일 뿐, 후보 간의 비교
지표는 될 수 없다.
이 후보는 기업가적 경영마인드에 이어 조직·인사·재정관리능력에서
0.13점의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이 후보가 시장이 될 경우 최고
경영지도자(CEO) 유형의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김 후보는 갈등 조정·중재 능력에 이어 정책 및 행정 전문성(0.08점),
대외 교섭력(0.01점)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김
후보의 정치가형 역량을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후보가 가장 취약한 역량은 갈등 조정·중재 능력(-0.32점)으로
평가됐다. 이 후보가 과거 현대건설 경영자로서 '불도저식 추진력'을
인정받은 것이 역으로 갈등 조정엔 약하다는 이미지를 형성시킨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의 가장 취약한 역량으론 조직·인사·재정관리
능력(-0.21점)으로 지적됐다. 김 후보가 기관장으로서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나온 평가로 분석된다.
후보 검증위원회가 납세실적, 병역, 직장근무경력(자기 손으로 돈을
벌어본 경력), 서울에서 살아온 기간 등 네 가지를 파악해본 결과,
이명박·김민석 후보는 납세실적이나 직장근무경력 면에서 큰 대조를
보였다.
▲납세실적=이명박 후보는 작년 서울 서초동과 논현동 소재 토지와
건물에 대해 1억1752만원의 재산세를 납부했다. 반면 2억4000만원 짜리
전세 아파트에 사는 김민석 후보는 "보유한 부동산이 없어 낼 재산세가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후보 본인이 납부한 재산·종합토지세는
1억1752만원 대 0원으로 나타났다. 종합소득세 납부실적에서도 이 후보는
"2000년 사업소득과 근로소득(월급)을 합쳐 1억5900만원을 벌었고, 이중
4568만원을 종합소득세로 냈다"고 밝힌 반면, 김 후보는 "2000년에
5496만원을 벌었고, 196만원의 근로소득세(종합소득세)를 냈다"고
답했다. 김 후보는 "소득에 비해 소득세를 적게 낸 것은 각종 기부금을
많이 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병역=두 후보 모두 병역면제자다. 이 후보는 "63년 자원입대 했으나
신체검사에 불합격해 귀가조치 당했고, 결핵까지 겹쳐 65년
병역면제(병종)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도 "민주화 운동으로
2년8개월간 복역했기 때문에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다"고 답변했다.
▲직장 근무경력=이 후보는 65년 현대건설에 사원으로 입사, 92년까지
현대건설과 현대 계열사의 사장·회장으로 근무했고, 92~98년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후보는 96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다.
▲서울에서 살아온 기간=이 후보는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18세에
상경해 59년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6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고 답했다.
▲위원장:오연천(吳然天) 서울대 행정대학원원장
▲위원:김민정(金玟廷)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박인제(朴仁濟)
변호사, 이달곤(李達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만우(李萬雨)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춘호(李春鎬)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임성호(林成浩)
경희대 정외과 교수, 장훈(張勳) 중앙대 정외과 교수, 정갑영(鄭甲泳)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가나다 順)
▲정리:조선일보 정치부 김창균(金昌均) 차장대우, 조희천(曺熙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