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과 뉴욕 접촉을 통해 여러가지 외교 현안을 다뤄왔다.
뉴욕을 방문하는 북한 고위관리가 이 자리에 나타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와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

23일(한국시각) 이형철 북한 외교부 미주국장의 방미 일정을 설명하
는 니콜라스 번스 대변인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가운데 26일 이뤄지는 미-북 외교접촉인 만큼, 가급적 의
미를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번스 대변인은 「이가 워싱턴에는
들르지 않으며, 이의 상대역은 윈스턴 로드 차관보가 아니라 실무급이
될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 만남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한국을 다분히 의식한 제스처다.

「뉴욕 접촉」이라는 어구는 주미 한국특파원들간에 하나의 관용어처럼
쓰인다. 국무부의 한국과장, 또는 부과장이 뉴욕을 방문, 북한 대
표부의 공사와 갖는 실무 회의를 이렇게 부른다.

미-북 뉴욕접촉이 시작된 것은 93년6월. 북한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
해 미-북은 몇차례 고위급 회담을 가졌는데, 이 고위급 회담의 일시, 장
소, 의제등을 정하기 위해 활용된 것이 뉴욕 접촉이었다. 핵협상 타결이
후에도 뉴욕 접촉은 미-북간의 외교 현안이 다뤄지는 창구역할을 해왔다.

「뉴욕 접촉」은 상당기간동안 한국언론들에게 주요한 점검 사항이었다.
미-북 관리가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뉴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였고, 신문-방송의 머리 기사를 장식하기 일쑤였다. 이같은 보도에는
「비밀접촉」 또는 「극비 접촉」이라는 용어가 따라 붙곤 했다. 한국을 도
외시한채 미-북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느냐는 「피해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한달 혹은 두달에 한번꼴로 열리는 뉴욕 접촉에서 놀랄 만한
합의사항이 도출된 적은 없다. 실무자급 접촉에서 엄청난 거래가 오갈지
모른다고 의심한 것 자체가 무리한 발상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뉴욕 접촉」에 「비밀」, 또는 「극비」라는 요란스런 수식어를 붙이는 관행
도 사라졌다.

미국이 이와의 만남을 뉴욕에서 추진한 것도 한국이 「뉴욕 접촉」에만
큼은 면역이 생겼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미-북간의 외교협상에 우리는 무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북접촉은
이미 일상적인 단계에 접어들었고, 미국을 방문하는 북한 관리의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은 무의미해져 버렸다. 또 두 나라는 마
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화와 팩스 통신으로 의사를 교환할 수도 있다.

이제 미-북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는 형식따위에는 좀더 의연하게
대처해도 좋을 듯 싶다. 물론 거기엔 「미-북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
고, 그 상호작용을 우리의 전략개념속에서 소화해 낼수 있다」는 전제가
따라야 겠지만….【김창균·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