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알렉스 만들(52)의 직함은 AT&T 사장이었다. 세계 통
신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2인자이자, 로버트 알렌 현 회장을 승계
할 「0순위」 후계자 후보였다. 만들은 최근 몇년간 진행중인 AT&T의
총체적 「리엔지니어링」을 진두지휘해왔다. 미 경제전문 주간지 포천
은 AT&T를 유럽형 내각제 국가에 비유하면서 「알렌은 군림하고, 만
들은 통치한다」고 비유했었다.
만들이 지난주 AT&T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연합통신」(AC)이라는
창업 기업의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AC는 무선통신 및
데이터서비스 등을 주업종으로 할 중소규모 회사. 유망 분야인 것은
분명하지만, 1년에 수만개씩 탄생하는 신생기업중 하나일 뿐이다.
적어도 95년 매출액 7백96억달러, 외형기준으로 미국의 5대 기업인
AT&T와 같은 반열에 설수는 없다. 더구나 알렌 AT&T회장은 자신이
65세가 되는 2천년에 은퇴할 뜻을 비추면서, 만들 사장을 가장 유력
한 후계자로 꼽아온 터였다.
만들이 떠나던 날, AT&T의 주가는 2.5%나 곤두박질쳤다. 월 스트
리트의 대표적인 정보통신분야 분석가인 잭 그루먼은 『AT&T가 적어
도 단기적으로는 내부 동요를 겪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공격적이고
노련한 만들의 퇴진이간단치 않은 경영 공백을 남기리라는 분석이다.
거대 기업의 총수자리를 눈앞에 두고 불확실한 장래에 몸을 던진
만들의 변은 의외로 단순하다. 『뭔가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다』는 것
이다. 『이미 공룡이 돼버린 AT&T에서 최고 경영자가 할 수 있는 일
은 기껏해야 「관리」일 뿐이다. 내 맘껏 일을 벌이려면 작지만 탄력
성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성공한 기업주가 안락의자를 박차고 나가
새 사업에 도전하는 것은 미국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특히 세
계 정보통신산업의 메카인 실리콘 밸리에서는 몇차례씩 창업에 나서
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실리콘 그래픽스」는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생생한 공룡의 동작을 연출해냈던 컴퓨터 그래픽
회사. 창업주였던 전직 교수 제임스 클라크는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곧바로 회사를 뛰쳐 나왔다. 그가 두번쩨 손을 댄 인
터넷 검색프로그램 업체 「」도 상종가를 쳤다.
첨단의 경계선을 밀어내는 전쟁터에서 기업은 창조적인 혁신가들
의 것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실리콘 밸리 사람들은 『한 회사로 3년
이상 수익을 올리고 나면, 그는 이미 기업가가 아니다』라는 표현까
지 쓴다. 기업인이 한 회사에 평생 안주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지
언정, 결코 자랑거리는 못된다는 것이다.
거대기업을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상황에서 혁신적인 기업운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한국의 재벌 기
업들이「도전적인 투자」보다는 「문어발식 확장」에 더 열을 올리는 것
도 이런 풍토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김창균·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