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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새까만 털로 뒤덮인 아메리카 흑곰의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퀭하고 입에서는 연방 침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놀라운 스피드로 도망가는 차를 따라잡는가 하면, 발톱으로 나무 기둥을 찍으며 척척 올라갑니다. 가공할만한 공격에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집니다. 이 잔혹한 살육극을 벌이는 곰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습니다. 초강력 마약 코카인을 흡입한 마약중독곰입니다.

운송중 유실된 마약을 흡입하고 난동을 피우는 아메리카 흑곰의 이야기를 그린 '코카인 베어' 포스터. /코카인베어 공식 홈페이지

오는 2월 24일 미국 개봉을 앞두고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코카인 베어’의 사전 공개 장면입니다. 밀수꾼들이 은밀하게 비행기로 공수하던 대량의 코카인이 숲속으로 떨어졌는데 이걸 흡입하고 돌아도 단단히 돌아버린 곰이 전대미문의 잔혹극을 펼친다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핵심 내용은 베일에 가려져있습니다만, 과거 괴수를 다룬 영화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식인 설정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식인 사자 듀오의 엽기적 행각 실화을 다룬 ‘고스트 앤드 다크니스’나, 초대형 식인악어를 전면에 앞세운 ‘플래시드’, 메가톤급 뱀을 등장시킨 ‘아나콘다’가 그런 것처럼 말이죠. 사자와 악어, 뱀은 지금도 종종 비극적인 식인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 짐승들이죠.

‘코카인 베어’가 눈길을 끄는 까닭은, 사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입니다. 1985년에 벌어진 사건인데, 실제 영화만큼 잔혹하지는 않대요. 조지아주의 산악지역에서 코카인을 다량 복용한 곰이 숨진 채 발견됩니다. 부검 결과 곰은 코카인 중독 상태로 밝혀졌습니다. 마약밀수꾼들이 공수하다 떨어진 코카인을 흡입한게 화근이었습니다. 다만 영화에서의 설정과는 달리 사람을 해쳤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마약중독곰이 인간을 상대로 살육극을 벌인다는 설정은 애당초 말도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BBC Youtube 한 리조트에서 원숭이가 관광객이 먹다 남은 알콜성 음료를 홀짝 홀짝 들이켜고 있다.

우선 짐승이 약물에 취하는 것이 가능한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와 관련해서 영국 BBC가 2014년 5월 사람과 같이 털달린 젖먹이 동물들의 다양한 중독 사례를 소개한 기사를 게재해 눈길을 끕니다. 우선 사람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들이 대대손손 중독되어간 사례가 있습니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이지만, 18~19세기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붙잡혀온 사람들과 함께 만리타국에 건너온 벨벳원숭이들입니다. 이 원숭이들은 카리브해의 섬들에 정착해 자생했는데요. 마땅한 포식자 없이 300여년간 번성하면서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재배하던 사탕수수에 탐닉하게 됐습니다. 사탕수수를 태우는 과정, 혹은 자연상태의 사탕수수가 여러가지 이유로 발효되는 과정에서 술처럼 바뀌는데 그만 이 천연 과실주의 알코올릭한 기운에 흠뻑 빠져버린 겁니다. 대대손손 이어져오면서 점차 원숭이들의 체질도 술을 받는 쪽으로 진화했고요.

/BBC Youtube 돌고래가 복어를 입에 물고 독어 몸에서 빠져나오는 독성분에 탐닉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람에 가깝게 지능이 발달한 돌고래는 귀여운 생김새와는 다르게 쾌락 탐닉에 일가견이 있습니다. 뱀을 죽인뒤 사체를 몸에 부비며 성적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례가 발견된 적도 있고요. 1995년 해양과학자 리사 슈타이너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대개 4~7마리 정도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뱀코돌고래들이 이례적으로 60여마리가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돌고래들은 뭔가에 홀린 듯 느릿느릿 헤엄치며 요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고래들 사이에는 네 마리의 복어가 있었고, 그 중 한마리는 뒤집혀있었습니다. 뱀코돌고래들이 집단적으로 복어독을 내뿜게 한 뒤 거기서 나오는 물질에 환각상태에 빠져든것으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독을 품은 살아있는 물고기를 마약으로 활용하는 대환장파티였던 거죠.

/Earth Touch News Network 지난 20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사파리 구역에서 촬영된 모습. 마치 술에 취한 동료를 일으켜세우는 코끼리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에 대해 일각에서는 마룰라 나무 등의 물질에 취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끼리 역시 약물로 쾌락을 탐닉하는 동물 중 하나로 알려져있습니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먹거리 중에는 아프리카 인들에게 대대로 신성시되어온 마룰라 나무가 있는데요. 코끼리들이 이 나무 열매나 줄기를 먹을 때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여러 차례 포착됐습니다. 마룰라 열매에는 일부 알코올 성분이 함유돼있고, 나무 껍질에는 독성분을 품은 딱정벌레 번데기가 많이 붙어있습니다. 이렇게 열매와 껍질에 있는 물질들을 흡입하면서 쾌락에 빠져들고 중독되고 있는 것으로 일부 과학자들이 추측하는 것이죠.

/CBC. Dan Ralfa/Parks Canada 북미의 대표적인 맹수 회색곰이 말코손바닥사슴 사체를 뜯어먹고 있다. 영화 '코카인 베어'를 계기로 마약에 취한 곰의 인간 살육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마약으로 환각상태에 이른 짐승이 사람을 덮치는 경우는 그저 영화적 상상에만 가능할까요? 그걸 어떻게 단정하겠습니까? 미국에서 사람과 곰이 마주치는 사건은 이제 변수가 아닌 확실한 상수가 됐습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곰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상수입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곰의 인간 습격사건은 총 14건인데 이 중 8건에서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여러 정황상 식인으로 볼 수 밖에 없었어요. 맨 정신의 곰도 사람도 식육괴수로 돌변하는 마당에, 환각제 흡입으로 신진대사가 비정상적으로 발현된다면 초대형 참사가 발생할 여지도 없지 않다고 봅니다.

때마침 지구촌을 불문하고 독버섯처럼 퍼지는 마약문제와, 사람이 기르다 내다버린 뒤 유해조수로 돌변한 길고양이·들개 등의 문제는 쌍둥이처럼 사회문제화되고 있습니다. ‘코카인 베어’라는 영화의 등장은, 어쩌면 별개의 문제같았던 두 사안의 기괴하고 비극적인 랑데부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전주곡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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