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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은 먹는자와 먹히는 자의 처절한 전쟁입니다. 끝날 수도, 끝날 리도 없는 무기한 전쟁이죠. 그 사투의 순간이 담긴 컷은 비장함을 안겨줍니다. 여기 먹는자와 먹히는자가 맞닥뜨린 사진 한 장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BBC 어스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인데요. 물새 한 마리가 곧 물고기를 꿀꺽 삼키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S자로 구부린 목은 영락없는 왜가리의 그것인데, 어두운 털색과 잿빛의 몸색깔은 가마우지와 흡사합니다. 왕성한 먹성과 사냥본능으로 물고기들의 천적으로 군림하는 괴조(怪鳥) 둘을 인위적으로 하이브리드한 것 같은 생김새입니다. 바로 뱀가마우지입니다. 물고기를 향해 섬뜩하게 이죽거리는 것 같아요. “어서와. 뱀가마우지 뱃속은 처음이지. 내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되는 거야.”
두 존재가 이렇게 가까이 눈을 마주한 순간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그 짧은 순간을 끝으로 가련한 물고기는 뱀가마우지의 뱃속으로 사라질 참입니다. 온전한 생명체로서의 모습은 이게 마지막입니다. 모래주머니에서 갈리고 위에서 녹아들어 형해화돼 뱀가마우지의 피와 살의 영양분으로 스며든뒤 나머지는 똥과 오줌이 범벅이 된 새똥으로 배출될 것입니다. 이 뱀가마우지가 번식기 새끼를 기르는 부모새라면, 반쯤 삭혀진 채 게워져나온뒤 잘게 쪼개져 새끼들의 입속으로 분산배치될 것입니다. 곧 있으면 입속으로 탈탈 털려들어갈 가련한 물고기의 옆에 구멍이 선연합니다. 뱀가마우지의 매혹·엽기적 사냥술의 명확한 흔적입니다.
왜가리와 가마우지를 반반쯤 섞어놓은 이 새는 다른 어느 새도 구사하지 못하는 지능적이고, 매혹적인 사냥술을 구사합니다. 잡아먹히는 물고기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그 동작 자체가 하나의 예술입니다. 뱀가마우지의 사냥은 세가지 연속 동작으로 이어집니다. 첫번째, 찌르기입니다. 자맥질을 하고 헤엄치다가 적당한 먹잇감이 걸렸을 때, 그 몸뚱이를 향해서 부리를 힘차게 내리뻗습니다. 뱀가마우지의 부리는 날카롭게 잘 벼린 창입니다. 앙다문 부리로 전광석화처럼 내뻗는 공격에 창졸간에 몸을 꿰뚫린 물고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버둥거리는 몸부림뿐입니다.
두번째, 던지기입니다. 부리에 꿰어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얼마나 정확히 입속으로 넣느냐가 관건이죠. 가장 어려운 연속동작이 필요합니다. 찌른 부리에서 빼낸 다음 공중으로 내던지는 것이죠. 별다른 도구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꿰뚫린 물고기가 부리 끝으로 미끄러질때까지 세차게 머리를 흔드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부리 끝으로 빠져나간 물고기는 아주 잠시나마 찰나의 자유의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해방감도 잠시 뱀가마우지는 허공에 던져졌던 물고기의 낙하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입을 쩍 벌립니다. 그리고 처연한 몸짓을 끝으로 물고기는 뱀과 같은 새의 목을 타고 넘어들어가 위장으로 직행해 새와 하나가 되는 슬픈 소화과정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일정한 패턴의 연속동작으로 사냥하는 새를 찾기가 드뭅니다. 맹금류인 수리나 매는 발톱으로 움켜쥐어 잡은 뒤 먹잇감이 살아있건 말건 바로 털을 뽑고 거죽을 찢어발기기 시작합니다. 올빼미는 아무리 큼지막한 먹이도 대개 꿀떡꿀떡 삼켜버리죠. 왜가리나 가마우지도 큼지막한 먹잇감을 부리 너머 목구멍으로 삼켜버리지만, 뱀가마우지만큼 입체적 기교는 발휘하지 않습니다. 먹잇감의 몸통을 꿰뚫는다는 측면에서 때까치가 개구리나 물고기를 나뭇가지에 꿰어둔뒤 꾸덕꾸덕 포로 말려먹는 습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주변 지형지물을 활용하는 차원입니다.
뱀가마우지가 이토록 기묘한 사냥술을 선보이는 것은 몸의 구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습니다. 뱀가마우지는 자유롭게 날아다니기에 적합한 신체 구조는 아닙니다. 이들 종류는 대다수의 새가 갖고 있는 기낭(氣囊·공기주머니)이 없을 뿐더러, 속이 텅 비어서 공기가 잘 통하고 가벼운 여느 새의 뼈와 달리 뼈도 속이 꽉 차 있고 무거운 편이죠. 그래서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보내요. 무거운 몸뚱아리는 물속에 담그고 왜가리와 빼닯은 목을 뻗고 헤엄을 칩니다. 그 모습이 마치 뱀같다고 해서 이 새는 원래 이름(original darter) 보다는 뱀새(snake bird)라고도 더 많이 불립니다. 뱀가마우지가 왜가리·가마우지와 같은 구역세에 서식하면서 물고기를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VELLODE BIRD SANCTUARY Youtube) 보실까요?
왜가리와 가마우지 모두 어마무시한 먹성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번식력으로 최근 우리 주변에서 썩 많이 볼 수 있게 됐죠. 현재는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지만, 기후 온난화 추세를 감안하면 언젠가는 한강이나 서해바다에서 뱀가마우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왜가리와 가마우지가 함께 서식하는 서울 한강·중랑천 합류부에서 이들을 하이브리드한 모양새를 한 뱀가마우지까지 세 괴조가 군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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